2021. 3. 28. 14:39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꽃은 달려가지 않는다
박 노 해
눈 녹은 해토에서
마늘 싹과 쑥 잎에 돋아나면
그때부터 꽃들은 시작이다
2월과 3월 사이
복수초 생각나무 산수유 진달래 산매화가 피어나고
들바람꽃 씀바귀 꽃 제비꽃 할미꽃 살구꽃이 피고 나면
3월과 4월 사이
수선화 싸리꽃 탱자 꽃 산벚꽃 배꽃이 피어나고
뒤이어 꽃마리 금낭화 토끼 풀꽃 모란꽃이 피어나고
4월의 끝자락에
은방울꽃 찔레꽃 애기똥풀 꽃 수국이 피고 나면
5월은 꽃들이 잠깐 사라진 초록의 침묵기
바로 그때를 기다려 5월 대지의 심장을 꺼내듯
붉은 들장미가 눈부시게 피어난다
일단 여기까지, 여기까지만 하자
꽃은 자기만의 리듬에 맞춰 차례대로 피어난다
누구도 더 먼저 피겠다고 달려가지 않고
누구도 더 오래 피겠다고 집착하지 않는다
꽃은 남을 눌러 앞서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이겨 한 걸음씩 나아갈 뿐이다
자신이 뿌리내린 그 자리에서
자신이 타고난 그 빛깔과 향기로
꽃은 서둘지도 않고 게으르지도 않고
자기만의 최선을 다해 피어난다
꽃은 달려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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