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3. 22. 21:40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
2009년 기숙사 생활을 할 때, 내가 살던 1층에는 전산실 목적으로 만들어 놓은 소규모 그룹실이 있었다. 하지만 그룹실 내에 컴퓨터는 한 대도 없었다. 그룹실은 학생들의 공부방으로 사용되었고, 내 방 맞은편에 있었다. 도서관에서 밀린 과제를 마무리하고 기숙사에 들어오면 대략 오후 11시 정도였다. 말끔히 씻고 나서, 자정이 다 될 무렵 책 몇 권을 들고 그룹실로 향했다. 학기 중에 새벽녘까지 공부하는 학생은 없었기에, 그룹실엔 아무도 없었다. 그룹실이 이층으로 올라가는 통로 근처에 있어서 늦은밤 귀가하는 이들의 발걸음 소리와 수다소리가 이따끔 들려오긴 했다.
그룹실은, 혼자 쓰기엔 꽤 큰 방이었다. 10평 남짓되었다. 무거운 적막함이 텅 빈 공간을 채웠다. 책장 넘기는 소리만이 메아리쳤다. 내 딛고 있는 땅에 홀로 서 있는 듯한 새벽의 적막함이 좋았다. 새벽 3~4시까지 글과 마주했다. 그 때, 독서 삼매경에 빠져 전공공부는 뒷전이었다. 김훈 작가의 '공무도하'를 읽으면서 책 속의 "문장력 좋구나, 씨발놈"이란 문장을 계속 읊조렸다. 알렉산드로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을 읽고, 존재와 생존의 문제에 대해 생각했다. 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를 읽다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아 욕지거리 몇 번 내지르기도 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 때 마주했던 적막함은, 잊을 수 없다. 나를 압도하는 그 무언의 강렬함, 느껴보지 못한 자는 절대 모를 것이다. 그 때의 추억이 날, 적막함 가운데 거하게 하는 것 같다. 아마, 그 적막함으로 형성되어 온 가치관들이 군중들의 맹목적인 선동을 혐오하게 만들었으며, 무리들의 겁없는 행동을 가엾게 바라보게 했을 것이다. 적막함 앞에서 몸서리 칠 개개인들이지 않은가.
오늘도, 적막함 앞에 선다. 흐트러진 나를, 바라본다. 무뎌진 이성의 날을 세워야 함과 나약할 수 밖에 없는 인간임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적막함, 좋아하는 이가 있을진 모르겠지만 내 삶과 뗄 수 없는 한 영역임을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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