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득의 심리학 _ 로버트 치알디니

2022. 10. 28. 22:34 카테고리 없음

25쪽

 널리 알려진 인간 행동의 원칙 중 한 가지는 누군가에게 부탁할 때 이유를 밝히면 더 성공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에 이유가 있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중략>

차이를 유발한 것은 이유를 설명하는 문장 전체가 아니라 문장의 첫 단어인 '왜냐하면'이기 때문이다. 랭어는 세 번째 실험에서 양보를 부탁하는 진짜 이유를 밝히는 대신 '왜냐하면'이라는 단어를 말한 후 전혀 새로운 내용 없이 이미 밝혀진 사실을 다시 언급하도록 했다. "실례합니다. 제가 서류 다섯 장이 있는데 복사기를 먼저 사용해도 될까요? 왜냐하면 제가 복사를 좀 해야 하거든요." 실험결과는 거의 모든 사람인 약 93퍼센트의 승낙으로 나타났다. 승낙할 만한 어떤 실제적인 이유나 새로운 정보가 없는데도 말이다. 박제 족제비에게서 흘러나오는 새끼 칠면조의 '칩칩' 소리가 어미 칠면조의 자동적인 양육 행동을 촉발했듯이 양보를 요청하는 이유가 전혀 제시되지 않은 경우라도 '왜냐하면'이라는 단어는 랭어의 피험자들로부터 자동적인 승낙을 유발했다. '누르면, 작동'하는 것이다. 

 

37쪽

 인간의 인식과 관련한 원칙 중에 '대조 원리contrast principle'라는 것이 있다. 2개의 대상을 차례로 제시할 때 둘 사이의 차이를 인식하는 방법이 달라진다는 원리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두 번째 대상이 첫 번째 대상과 차이가 심할 경우에는 그 차이가 실제보다 '더'크게 다가온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먼저 가벼운 물체를 들었다가 이어서 무거운 물체를 들게 되면 무거운 물체만 들었을 때보다 훨씬 무겁게 느낀다. 대조 원리는 정신물리학(psychophysics, 인지현상과 자극의 물리적 성질과의 관계를 조사하는 학문 분야) 분야에서 정립된 원리로 무게뿐 아니라 거의 모든 종류의 인지 과정에 적용 가능하다. 모임에서 매우 매력적인 사람과 대화를 하다가 갑자기 변변찮은 사람과 대화를 하게 되면, 두 번째 사람이 실제보다 훨씬 더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41쪽

 자동차 판매상들도 대조 원리를 사용한다. 그들은 자동차 협상이 완전히 마무리될 때까지는 이런저런 옵션 설치를 권하지 않는다. 수만 달러짜리 거래를 마무리짓고 나면 음향기기 업그레이드 같은 사소한 옵션을 위해 수백 달러 정도의 비용을 추가로 부담하는 일은 비교적 하찮게 느껴진다. 판매상들이 연달아 권유하는 차 유리 선팅이나 타이어 업그레이드, 각종 액세서리 장착 등을 위한 추가 비용도 마찬가지다. 비결은 각종 옵션들을 하나씩 따로따로 제시함으로써 그렇지 않아도 적은 비용을 이미 결정된 본체 가격과 비교해 더욱 하찮아 보이게끔 하는 것이다. 자동차를 구매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이런저런 사소한 옵션들을 추가하다 보면 예산에 맞춰 계약해놓은 최종 구매 가격이 말도 안되는 수준으로 부풀곤 한다. 구매자들이 서명한 계약서를 손에 들고 황당한 얼굴로 머리를 쥐어뜯고 있을 때 자동차 판매상은 노련한 주짓수 고수의 미소를 짓는다.  

 

51쪽

 문화인류학자인 타이거와 폭스는 사회 발전을 이루는 데 가장 핵심이 되는 요소가 바로 미래지향적 의무감이라고 주장한다. 인간 사회는 강력하고 광범위한 미래지향적 의무감을 공유함으로써 엄청난 발전을 이뤘다는 것이다. 즉, 미래지향적 의무감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고 채택돼 있는 인간 사회에서는 누구라도 안심하고 다른 사람에게 음식이나 에너지, 보살핌 등의 호의를 기꺼이 베푸는데, 이런 호의는 나중에 자신에게 호의가 필요할 때 되돌려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57쪽

 일단 조에게 신세를 지고 나자 조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상관이 없었다. 피험자는 조에게 보답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꼈고 실제로 보답을 했다. 조를 싫어한다고 답했던 피험자도 조를 좋아한다고 답했던 피험자도 동일한 분량의 복권을 구매했다. 상호성의 원칙은 매우 강력해서 승낙 여부에 영향을 미쳤을 상대에 대한 호감이라는 요인마저 압도해버렸던 것이다. 

 

63쪽

 한 연구에 따르면 해당 약물의 안전성을 지지하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과학자들 전원이 사전에 제약회사의 지원, 즉 무료 여행, 연구 기금, 고용 등의 혜택을 받은 경험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반면 해당 약물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발표한 과학자등 중에 사전 지원을 받은 경우는 37퍼센트에 지나지 않았다. 

 

64쪽

 공짜 샘플로 판촉을 하는 업체들은 마치 주짓수 고수들처럼 제품 홍보에만 목적이 있는 척하면서 사람들에게 공짜 선물이 주는 자연스러운 부채의식을 심는다. 

 

68쪽

 우리는 상호성의 원칙에 따르면 아무리 이상하고 불쾌하고 달갑지 않은 사람이라도 호의를 먼저 베풀 경우 상대의 승낙을 받아낼 확률이 눈에 띄게 높아진다는 사실을 알았다. 상호성의 원칙에는 그 막강한 위력 외에도 이런 현상을 가능하게 하는 또 다른 측면이 있다. 원치 않는 호의를 받았을 때도 부채의식이 촉발된다는 점이다. 상호성의 원칙은 상대에게 받은 대로 돌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원해서 요청한 것을 제공받았을 때에만 부채의식이 생기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미군 상이군인협회의 보고에 따르면, 단순한 기부금 요청 편지에 대한 응답률은 18퍼센트 정도라고 한다. 그런데 편지와 함께 상대가 부탁하지도 않은 선물(접착제를 바른 주소 라벨)을 동봉해 보내자 성공 확률이 거의 두 배나 치솟아 35퍼센트에 달했다. 물론 자신이 원해서 부탁한 호의를 제공받았을 경우엔 보답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더 강하게 들 것이다. 그렇지만 먼저 요청했을 경우에만 부채의식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상호성 원칙의 사회적 목적을 잠시 생각해보면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지 이해할 수 있다. 상호성 원칙의 성립 목적은 사람들 사이에 호혜적 관계의 발전을 촉진해 누군가의 손실에 대한 두려움 없이 호혜적 관계를 '시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상호성 원칙의 목적이 그러하다면 상대방의 요청 없이도 제공하는 첫 번째 호의에도 부채의식을 불러일으킬 능력이 있어야 한다. 또한 호혜적 관계는 그런 관계를 조장하는 사회에 상당한 이익이므로 사회에는 상호성의 원칙을 제대로 작동시키려는 강한 압력이 존재한다. 이에 따라 저명한 프랑스 인류학자 마르셀 모스가 선물 교환과 관련해 인류 문화에 존재하는 사회적 압력을 설명하면서 세상에는 '줄 의무'와 '받을 의무', '갚을 의무'가 있다고 말한 것을 이해할 수 있다. 

 

72쪽

 상호성의 원칙은 처음에 직접 호의를 주고받은 사람들한테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들이 속해 있는 집단 구성원한테까지 확대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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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번째 이야기 - 권위에 대한 반감이 생겼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2019. 2. 11. 12:56 삶을 살아내다/상담

[아홉 번째 이야기  - 권위에 대한 반감이 생겼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선생님을 만난 지 3달이 지났다. 매주 만난 것은 아니지만 만날 때마다 밀도 높은 대화를 이어나갔다.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하면서 나의 감정과 행동에 대한 이해 기반을 마련하였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고 싶었다. 상담의 목적이 감정의 해결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왕 시작했으니 문제를 끝맺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제 왜 그런지 알았으니,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궁금했다. 선생님께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권위에 대한 반감이 생겼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선생님의 대답을 요약하면 크게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상황인지, 해결방안 요구 및 강구, 부정적 이미지 대체. 첫째, 내가 처한 상황을 인지해야 한다. 권위를 가진 사람과 감정이 쉽게 민감해질 수 있는 주제를 다루거나 권위자가 나쁜 어른의 모습으로 행동할 때 나의 감정상태가 달라진다는 것을 스스로 인지해야 한다. 예를 들면 '권위자가 나한테 부당한 지시를 내려서 내가 지금 화가 났구나', '저 주제는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내가 지금 감정이 불편하구나' 등과 같이 나의 감정상태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 둘째, 해결책을 요구하거나 마련해야 한다. 만약 강압적 지시를 내리는 권위자의 모습에 화가 났다면, 그 지시에 대한 설명과정을 요구해서 과정에 대한 설명을 들음으로써 "지시"에 대한 이해를 해야하는 것이다. 셋째, 권위자(어른)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만들어야 한다. 권위에 대한 반감은 어릴 적 가부장적인 아버지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어릴 적 정서 발달에 영향을 끼친 부정적인 경험이나 충격은 원시적 뇌에 저장되기 때문에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다만 시간이 지나면 기억이 흐려질 뿐이다. 따라서 권위자(또는 어른)을 만나거나 대할 때 상대방이 내가 생각하는 나쁜 어른과 다르다는 것을 매번 확인시켜줘야 한다. 즉, 부정적으로 인식된 어른에 대한 정서 기억을 어른에 대한 긍정적인 경험으로 대체하라는 것이다. 수많은 경험의 축적을 통해 기억을 바꿀 수 있기때문에 단시간 내에 권위에 대한 반감을 해결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이제 회복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다른 주제로 넘어갔다. 세 가지 자아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선생님은 자아는 크게 세 가지로 도덕적 자아(ego), 본능적 자아(Id), 중재적 자아(Super ego)로 나뉜다고 말씀하셨다. 도덕적 자아는 신념과 가치관에 따른 의지적인 것이며, 본능적 자아는 욕구 그대로 반응하려는 것이고, 중재적 자아는 도덕적 자아와 본능적 자아 사이에서 중재하는 실재적 존재, 즉 행동하는 나를 가리키는 것이다. 나 같은 경우는 도덕적 자아가 상대적으로 발달했다. 20대 중반에 신앙을 가지는 과정에서 하나님에 대한 보상(트라우마 치유)으로 성경에서 말하는 가치관을 따라 살기로 작정했다. 왜냐면 신앙을 갖기 이전에 삶의 목적과 의미를 찾지 못했는데,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 존재론적으로 의미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삶을 움직이는 강력한 원동력은 종교적 가치관과 신념이었다. 인간 본연의 욕구는 억누른 채 종교적 신념과 가치관에 따라 행동의 당위만을 따지며 살아왔다. 근본적인 욕구를 비롯한 다양한 욕구들을 억눌렀다. 내 안에 거대한 도덕적 자아 아래 움츠 본능적 자아를 가진 괴물을 만들어놓은 것이다. 중재적 자아, 즉 행동하는 존재로서 도덕적 자아에 관한 이야기를 덜 듣고 본능적 자아에 대한 요구에 귀 기울이면서 본능적 자아와 도덕적 자아 사이의 균형을 잡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 문제 또한 단시간 내에 해결될 사항이 아니다.

 

 

  오랜 세월 뒤틀린 감정을  내버려두었다. 감정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사치라고 생각했다. 감정을 하찮게 여기거나 무시했다. 외면한 감정들은 내 안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마음속 어딘가에서 차곡차곡 쌓였다. 이제 스스로 그 감정들을 어루만져야 한다. 그게 곧 내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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