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흔적

2014. 9. 10. 02:51 삶을 살아내다

9월 6일 


자정.


모두들 연휴라 일찍 집에 간, 학교에 덩그러니 혼자 남았다. 적막하다. 교정이 텅텅, 비었다. 키보드를 누르는 소리만, 연구실에 울린다. 정리되지 않는 생각의 편린들을 모아보지만,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지 못한다. 발만 동동 구르다, 결국 'Send' 버튼을 누르다. 에라, 모르겠다. 


오토바이, 부릉부릉. 


기숙사에 도착해서, 잠들지 못하는 시간. 연휴인데, 집에 가야 하나, 아님 학교에 머물러야 하나, 고민한다. 여기를 떠나야겠다는 의지가 강렬하다. 코레일 홈페이지에 승차권 예매란에 들어간다. 도착역을 대구로 정하고, 여석을 확인한다. 새벽녘 기차표가 아직 남았다. 망설이고 싶지않다. 이따위 일에. 오전 6시 45분 대구행 기차표를 예매한다. 보고싶은, 볼 친구들을 떠올린다. 






9월 7일 


새벽녘.


5시에 눈을 떴다. 눈을 감았다가 뜬 기분이다. 개운하지 않았다. 나갈 채비를 하고, 놔둔 물건이 없나 확인. 그리고 기숙사를 나섰다. 


기차. 칙칙폭폭.





오전


대구에 도착해서 동신교회 2부 예배를 드린다. 커져만 가는 교회에, 점점 나는 정을 잃어가고 있다. 짜여진 큐시트에 따라 움직여지는 예배는, 종이 울리면 끝나야 하는 수업처럼, 누군가의 지배를 받고 있다. 하나님이 아닌 그 누군가, 어리석은 인간들이여. 


이병준 교수님을 만나, 대학원에서 교수님과 갈등을 토로하고, 이병준 교수님은 무엇보다 교수님의 갈등을 해결하고 교수님이 원하는대로 하는 것이 맞지 않겠냐, 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상우를 만나, 이런저런 사소하지만, 가슴 한켠 쌓아둔 이야기들을 하고, 상우가 새벽기도를 가기 시작했다는 말에, 감사하고. 



버스를 타고 울산으로. 



오후


울산시외터미널에 내려, 누나가 있는 병원으로 가기위해, 택시를 탄다. "**병원이요". 근데 기사 아저씨가 병원 위치를 잘 모르는 눈치다. 2분쯤 지났을까, 아저씨한테 물었다. "혹시 병원을 아세요...?", 대답이 없다. 뭐하자는 거지, 썅. 차안에 네비게이션도 없다. 아저씨에게 장소를 모르겠으면, 나를 내려달라고, 다른 차를 타고 가겠다고. 아저씨는 그러라면서, 차를 세운다. 당연히, 목적지에 안 데려다 줬으니, 돈을 안 주고 내리는게 맞겠지...라고 생각하며 내리려는데, 아저씨 왈, 택시비는 내야지!, 이 아저씨 보소, 이제 흥분하여 욕까지 하신다. 



나 왈, 아저씨 욕은 하지 마시고요!



아저씨, 그제서야 폰 네비를 켜서 목적지를 부랴부랴 검색한다. 목적리를 찾았단다. 택시안은 냉랭하고, 밖은 후덥지근하다. 목적지에 도착한다. 뭐, 나도 잘한것이 없으니, 사과해야지, "아저씨, 연휴인데 기분 언짢게 해서 죄송합니다.", 아저씨도 미안하단다. 그럼 됐지, 뭐.



산후조리원으로, 뚜벅뚜벅. 



누나가 입원한 산후조리원에 간다. 조카를 보려니, 면회시간이 아니라는. 누나는 동생이 서울에서 왔다고, 양해를 구한다. 서울에서 왔다구요!?, 그럼 잠깐 보여드려야겠네요. 앗싸! 조카의 실물이 사진보다 훨씬 낫다, 미남이구만. 면회를 마치고 엄마가 된 누나와 대학원 얘기, 교회얘기, 후배들 얘기,  복음얘기를 한 시간정도 나눈다. 오랜만에 누나와 진지한 대화를 나눈 듯. 티내지 않고, 꾸준히, 응원해주는 피붙이의 존재만으로, 마음이 든든해진다.  벌레의 트라우마에 갇힌 매형도 보고, 멘붕. 꿈틀꿈틀.



다시 버스를 타고, 경주로. 지긋지긋한 버스 같으니라고.



약 1시간을 달려 집에 도착하고. 아버지, 엄마를 뵙고, 부모님 왈, 살이 더 빠졌구나. 옷 하나 사입으랬더니, 안 사입었네. 오랜만에 뵙는 부모님, 두 분 다 얼굴이 좋으시다. 한결 마음이 편하다. 몬난 자식 등록금 대느라, 등골휘시는 부모님 앞에서 늘 작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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