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0. 12. 22:38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의 글
추분(秋分)이 지났다. 불어오는 스산한 바람에 옷깃을 여민다. 추워진 날씨 탓에 집 안에서 웅크리고 있는 걸 즐긴다. 웅크린 채 주로 하는 것은 묵묵히 글을 읽어나가는 것이다. 쌓여가는 책들을 보면서 언젠가는 마음의 짐을 덜어내야겠다고 매년 다짐했다. 요즘 그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내고 있다. 눈에 보이는 활자들이 많아질수록 말수는 줄어들고 생각은 의외로 단순해진다.
나의 삶에 대해 다시 묻고 있다. 삶의 여정에서 무슨 연유로 이 공간, 이 지점에 서 있는지 묻고 있는 것이다. 정답 없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기는 참 오랜만이다. 요즘 답이 정해진 질문에만 답하려고 애를 썼다. 수학처럼 정답이 정해진 인생 길이 편하기도 했고, 나름 고심하며 살았던 인생에서 삶의 의미를 정확히 찾아내지 못한 탓일 수도 있다. 내딛는 한 걸음에도 온 힘을 다하려고 했던 삶의 끝자락에서 표류했다. 방향을 잃어버렸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몇주사이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 이별과 만남, 그 속에서 언급되는 익숙했던 언어가 다시 나를 흔들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옛 모습에 대한 단순한 향수(鄕愁)일 수도 있다. 어차피 지금의 흔들림이 나아가기 위한 발버둥인지, 아니면 짙어지는 가을에 취한 방랑자의 한때인지는 시간이 지나봐야 알 수 있는 일이다. 저녁 가을바람이 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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