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는 삶 _ 앙토냉 질베르 세르티양주

2020. 4. 3. 08:06 책과 글, 그리고 시/서평(書評)

앙토냉 질베르 세르티양주 지음/이재만 역

 

 

고요한 확실성 안에서 편히 쉬어라

 

 다시 읽는 행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명석한 두뇌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읽는 행위에 더 집착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많은 정보들이 나를 대변해줄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정보의 축적을 위해 부단히 노력한 시간들이 있었다. 분명, 책을 통해 지식을 축적하긴 했지만, 책을 읽음으로써 얻은 가장 큰 유익은 사고하는 힘이다. 저자의 생각과 나의 생각을 맞추어 보면서, 같은 생각을 가진 저자에게는 큰 공감을 얻었고 다른 생각을 가진 저자에게서는 다른 관점의 통찰력을 얻었다.

 

습득한 것을 별다른 노력 없이 유지하는 것과, 단순히 일시적인 시작점에 지나지 않아 보이는 토대 위에 지식을 견고하게 쌓아가는 것은 아주 다르다.  

 

 책을 읽는 행위는 공부하고자 하는 뚜렷한 의지의 표출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공부하는 삶》은 다시 책을 읽을 동기를 부여했다. 공부하는 삶의 가치와 의미에 대해 다시 되새겼다. 무엇을 위해 공부했는가. 무엇을 위한 지식 습득이었는가. 과연 나는 지성인이 될 수 있는가. 하찮은 생각들은 머리만 아프게 하지만, 의미 있는 생각들은 나를 성장시킨다. 책을 읽음으로써 떠오르는 생각들은 분명 유의미하다. 공부하는 자의 삶을 계속 살아가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다만, 지성인은 고립되어서는 안 된다. 고독함 속에서 자유롭게 사유할 수 있으나, 고립과는 무관된 일이다. 

 

고립은 비인간적이다. 인간적인 방식으로 공부하는 것은 인간에 대한 연민, 자신의 위대함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는 연대감을 느끼면서 공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배우고 익히는 자로 함께 어울려 살아가며, 습득한 지식이 단편적인 하나의 사실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삶과 맞닿아 실질적인 결과물을 드러내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學而時習之 不亦悅乎.
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11쪽

세르티앙주는 저술에 필요한 노트를 동일한 크기의 메모지에 적어두고, 각각의 메모지에 주제에 상응하는 번호를 매기고, 같은 번호가 매겨진 메모지들을 클립으로 묶어서 분류하라고 조언한다. 

 

13쪽

세르티앙주는 공부를 위해 절제하고, 신체를 돌보고, 식사와 수면에 신경을 쓰고, 일상생활을 단순화하고, 사교활동을 삼가고, 내면의 고요를 유지하라고 말한다.

 

27쪽

당신이 빛을 운반하는 사람으로 지명된다면, 신께서 당신이 운반하기를 기대하는 그 어슴푸레한 빛이나 불꽃을 감추면서 가지 마라. 당신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가져오는 삶의 열매를 사랑하라. 공부에, 그리고 공부를 유익하게 쓰는 데에 당신이 가진 시간과 마음 중에서 가장 좋은 부분을 바쳐라.

 

36쪽

공부를 하도록 소명을 받아 성스러워진 지성인은 결코 고립되어서는 안 된다. 지위가 무엇이든, 혼자 있든 은둔해 있든 지성인은 개인주의의 유혹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 고독은 활력을 불어넣지만, 고립은 우리를 무기력하고 메마르게 만들기 때문이다. 

 

69쪽

쾌락에 탐닉하는 사람은 자기 신체의 적이기에, 머지않아 자기 영혼의 적이 된다. 금욕은 공부에 꼭 필요하며, 그 자체만으로도 그라트리 신부가 말한 '선명한 시야의 상태'에 우리를 이르게 할 수 있다. 육욕에 복종한다면, 정신이 되어야만 하는 당신은 육체가 되는 길 위에 서는 것이다. 

 

75쪽

시간과 사유, 자원, 역량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일과의 그물에 뒤엉키지 마라. 관습을 고분고분 따라서는 안 된다. 스스로의 안내자가 되어 관습이 아니라 자신의 신념에 따라 행동하라. 지성인의 신념은 그가 달성하려는 목표와 일치해야 한다. 

 

82쪽

은신처는 정신의 실험실이다. 내적 고독과 고요는 정신의 두 날개다. 세상의 구원을 포함한 모든 위업은 적막한 곳에서 준비되었다. 앎의 개척자, 영감을 받은 예술가, 평범한 사람, 신인, 이들 모두는 고독, 침묵의 삶, 밤에 찬사를 바쳤다. 

 

85쪽

「그리스도를 본받아」의 저자 켐피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사람들을 만나고 나면 항상 더 왜소한 인간이 되어 돌아왔다." 이 생각을 더 밀고 나아가면, 더 왜소한 인간이 되지 않더라도 자아가 더 왜소해진다고 말할 수 있다. 스스로를 단단히 붙잡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군중에 섞일 경우 정체성을 잃어버린다. 그러므로 반드시 그 전에 스스로를 붙잡아야 한다. 군중 속에서 개인은 다수의 이질적인 자아에 짓눌려 자기인식을 잃어버린다. 

 

145쪽

당신은 당신 자신을 공부해야 하고, 당신 삶이 어떤지, 삶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삶이 무엇을 촉진하고 배제하는지,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시간을 위해 삶이 무엇을 제안하는지 고찰해야 한다. 

 

144쪽

무언가를 하거나 아니면 아예 하지 마라. 하기로 결정한 것은 전력을 다하고, 계속 새롭게 시작하는 것처럼 정력적으로 하라. 반쪽짜리 공부와 반쪽짜리 휴식은 공부를 위해서도 휴식을 위해서도 이롭지 않다. 

 

195쪽

「고린토이늘에게 보낸 첫째 편지」 14장에서는 신앙이 제일 약한 사람일지라도 그가 기도를 하다가 계시를 받았다면 조용히 그의 말을 귀담아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에 관한 아퀴나스는 이렇게 성찰한다. "아무리 현명한 사람일지라도 다른 사람의 가르침을, 설령 아주 사소한 가르침이더라도 거부해선 안 된다." 이 성찰은 바울의 다음 조언과 호응한다. "다만 겸손한 마음으로 자기보다 남을 서로 낫게 여기십시오" 어떤 순간에 가장 뛰어난 사람은, 진리에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 그 빛을 받는 사람이다. 

 

213쪽

지나치게 읽는 정신은 양분을 공급받기는커녕 오히려 둔해지며, 서서히 성찰하고 집중하는 힘을 잃어버려 결국에는 산출하지 못한게 된다.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면, 정신은 내면을 향해 점점 더 외향적이 되고, 밀물 썰물처럼 흐르는 관념ㄴ과 내면의 이미지에 열렬히 집중하며 그것들의 노예가 된다. 이렇게 무절제한 기쁨에 몰두하는 것은 자신에게서 도피하는 것이다. 그 기쁨은 지성의 기능을 빼앗을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의 사유를 하나하나 따라가는 것 혹은 단어, 문장, 장, 책으로 이어지는 흐름에 실려가는 것만을 허락한다. 

 

242쪽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저자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남는 것이다. 우리 정신의 임무는 반복이 아니라 이해다. 다시 말해 우리는 읽는 것을 '붙잡아야' 하고, 몸으로 흡수해야 하며, 결국에는 스스로 사유해야 한다. 저자의 말을 들으면 - 저자를 본받을 수도, 저자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지만, 결국에는 혼자 힘으로 - 그것을 다시 표현하도록 정신을 재촉해야 한다. 지식의 요지를 우리 자신의 쓸모에 맞게 재창조해야 하는 것이다. 

 

287쪽

무엇보다 우리 자신을 위해 글을 써야 한다. 자신의 입장과 문제를 뚜렷이 보기 위해, 자신의 사유를 규정하기 위해, 계속 활동하면서 정신을 환기하지 않으면 시들해지는 주의력을 유지하고 자극하기 위해 써야 한다. 또 쓰다보면 조사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노력하다가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없어 지칠 때 기운을 북돋기 위해, 마지막으로 자신의 문제와 글의 특징을 만들어내는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써야 한다. 

 

289쪽

앞에서 글 쓰는 기술은 일찌감치 익히기 시작해 오랫동안 익혀야 하며, 이것이 점차 정신의 습관이 되고 문체를 이룬다고 말했다. 나의 문체, 나의 펜은 나 자신을 표현하고 영원한 진리에 관해 이해한 바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도구다. 이 도구는 내 존재의 자질, 내면의 성향, 살아 있는 뇌의 기질이다. 다시 말해 나 자신의 고유한 진화다. "문체가 곧 그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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