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 회복 _ 마종기

2016. 5. 9. 18:11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출처: www.online-instagram.com

 

 

 

 

 

국적 회복

 

 

                                마종기

 

 

 

1

 

그해에 나는 처음으로 젊었었다.

계절이 갑자기 끝나버린 그 여름,

군가도 더위에 녹아버리고 말았다.

동기 군의관들이 힘들게 면회 와서

감방에서 나보다 먼저 울었다.

내게 다시는시원한 날이 안 올 듯

한여름에 겨울옷을 놓고 갔다.

 

 

숨어 사는 쓰레기 소각장에서

남은 시도 다 태우고 풋정도 함께

끝없는 연기로 태웠다. 냄새까지 감춘

연기가 억울하다고 내게 속삭였다.

그 초라함과 삼켜도 안 넘아가는 모욕을

차가운 침묵의 태연한 재로 만들고

가볍고 이승의 바깥으로 나를 버렸다.

미련을 남기지 않는 고결한 변신,

나도 그쪽으로 가리라 각오했었다

입술을 깨물며 맛도 색깔도 변한 피를 삼켰다.

 

 

 

2

 

내가 미워했던 고국이여,

잘못했다. 긴 햇수가 지나도

계속 억울하고 서러웠다 .

치욕의 주먹이 미칠 것 같은

머리와 목덜미를 치고

내 앞길에 대못을 박았다.

더 이상은 선택이 없었다.

 

 

그 사이에 내가 늙고

기다려주리라는 꿈은

결국 실현되지 않았다.

계절이 바뀌어도

한 묶음의 세월이 지나도

산과 강이 옷을 벗어도

실현되지 않았다.

그렇게 혼자서 흘러갔다.

가다 보니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나는 믿었다.

물고기는 물고기끼리

낙타는 낙타끼리

나비는 나비끼리

그리고 사람은 사람끼리

언젠가는 서로 화해한다.

그 따뜻한 속내만을 믿었다.

누구에게도 손 내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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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www.toonpool.com

 

 

 

귀향

 

 

                                  마종기

 

 

 

1

 

돌아왔구나, 하고 친구가 말했다.

오래도록 나가서 떠돌며 살더니

이 일 저 일 털어내고 맨손으로

돌아왔구나, 하고 나를 잡아준다.

그런데 나는 정말 돌아온 것일까.

나 살던 동네도 모습 찾기 힘들고

알던 사람들 목소리 들리지 않는다.

 

 

 

2

 

그날은 저녁부터 밤새 비가 내렸다.

소름 끼치게 혼자 있지 않으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체질인 것을 알았다.

어떻게 남보다 많이 젖지도 않고

속내의 나를 모두 보일 수 있으랴.

그날은 떠난 날부터 시작되었다.

아무도 가보지 못한 곳에서 숨쉬는

신선하고 정결한 단어를 찾으려고

방향도 정하지 못한 채 낚싯줄을 던졌다.

 

 

 

3

 

알겠지만 나는 처음부터 너를 떠나지 않았다.

지난 며칠 왠지 밤잠을 설쳤을 뿐이다.

얼굴과 머리는 늙어 낙엽으로 날리지만

한 평 침대에 누운 저 꽃 잠 깨기 전에

재갈 물린 세월아, 모두 잘 가거라, 잘 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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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4. 30. 14:35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출처 : brunch.co.kr




헤밍웨이를 꿈꾸며 



                                                  마종기 



그랬지. 나는 늘 떠나고 싶었다. 가난도 무질서도 

싫었고 무리지어 고함치는 획일성도 싫었다. 떠나

고 또 떠나다 보니 여기에 서 있다. 낡고 빈 바닷가, 

잡음의 파도 소리를 보내고 산티아고 노인을 기다리

고 싶다. 남은 생명을 한 판에 다 걸고 집채만 한 고

기를 잡았던 헤밍웨이의 어부를 만나고 싶다. 그 쿠

바 나라 노인은 나를 기다리며 감추어둔 회심의 

소를 그때 보여줄 것이다. 해변에 눕는다. 해변이 

천히 그림자를 옮기면서 나를 치며 가라고 할 때까

지 계획 없이 떠나니던 내 생을 후회하지 않겠다. 

가 무리를 떠나온 것은 비열해서가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 아직도 말할 수 있다. 노을이 키웨스

트 해변에 피를 흘리고 흘려 모든 바다가 다시 무서

워질 때까지, 그리고 그 바다의 자식들이 몰려나와 

신나는 한 판 춤을 즐길 때까지.



마흔두 개의 섬을 연결한 마흔두 개의 다리를 건

너며 차를 달려 네 시간 만에 도착한 섬. 어느 다리

는 길이가 30리 정도까지 되어 가늘게 흔들리며 

망 바다에 떠 있어 어지러웠지만, 헤밍웨이는 야자

수밖에 없는 그 마지막 섬에 프랑스 미녀를 데려와 

넷째 부인으로 살림을 차리고 말술을 마셨다. 그 중

간에는 사람 열 배 크기의 상어를 잡고 거대 다랑어

를 잡고 아프리카에 가서는 사자와 표범과 코뿔소를 

피투성이로 죽이고 종국에는 그 총으로 더 늙기 전

에 미리 죽어버린 남자. 그가 쓴 통 크고 시야 넓은

은유의 글을 읽다가 나도 통 큰시를 꿈꾸며 모든 의

심과 열등감을 밟고 방을 뛰쳐나온다. 갈 곳은 없지

만 눈은 크게 뜨고 아직은 갈기 사나운 수사자를 꿈

꾸며, 가슴을 펴고 바다같이 넓은 시를 꿈꾸며, 다시 

한 번 키웨스트의 헤밍웨이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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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태나 평원 _ 마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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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mlbpark.donga.com 






몬태나 평원



                            마종기



모두 너를 모른다고 돌아갔지. 

그렇게 사철을 열심히 살면서도 

큰 눈으로 한번 웃지도 않고 

억울하다 소리쳐 울지도 않으니 

누가 거칠어진 네 속을 알아볼 수 있겠니. 



헤어져본 사람만은 안다. 

수척한 겨울, 눈보라 치는 이마에 

억새밭이 얼어서 떨고 있는 의미를 

그 넓은 소리 지평선까지 갔다 오는 동안

참기만 하면서 포기하는 네 나이의 고행. 



그래 울어야 한다, 별들의 얼굴아, 

북부 몬태나 주에서는 얼마나 어렵게 

하늘과 땅이 만나 몸 녹이다가

새벽녘 되어서야 아쉽게 헤어지는지.

그리워해본 사람만은 안다. 

이방의 평원이 아니더라도 어디서나 

인생이 얼마나 작고 쓰고 한없이 얇은지를, 

겨울 새벽이 얼마나 곱고 뼈아픈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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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의 말 2 _ 마종기

2016. 4. 21. 22:07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파도의 말 2



                                 마종기 




답답해 바다에 나왔다. 

서글픔으로 감싸인 연약한 해안을 

파도가 대신해 몸 풀어준다. 

이제 더 이상 기다릴 것이 없다. 

해방된 빈 배도 떠나고 

시들어가는 바다의 파도만 남았다. 

해안을 조심해 걸으며 

작은 파도를 하나씩 줍는다. 

한기와 체념으로 말라버린

바다의 말을 줍는다. 



내 파도여, 

말하는 바다의 잎이여, 

이렇게 쉽게 사는 것이 

죄는 짓는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파도의 여러 음성은 내내 

이승의 아쉬움을 말하고 있지만 

저녁은 우리 사이를 막고 덮어서 

내게 오던 파도가 

돌아서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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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뱀 _ 마종기

2016. 4. 21. 10:27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출처:  kr.clipart.me

 

 

 

도마뱀

 

 

                                                    마종기

 

 

  내가 사는 외국의 동네에는 도마뱀이 많이 산다.

10센티 정도의 길이가 동작 재빠르고 눈치도 빠르다.

가끔은 죽은 듯 오래 움직이지 않는 재주도 있다.

영리한 이 도마뱀을 잡으면 잡힌 부분을 스스로 쉽게

끊어버리고 도망간다. 짧게 꼬리는 잡으면 그 꼬리를 버리고,

길게 잡아도 몸의 반쯤만 한 꼬리까리 포기하고 도망쳐버린다.

그런데 나는 한 번도 꼬리 잘린 도마뱀을 본 적이 없다.

그런 도마뱀은 숨어서만 사는 것일까.

아니면 요술같이 새 꼬리가 금세 자라나는 것일까.

 

 

  내가 도마뱀의 끊어진 꼬리를 두 개나 가지게 된 날 밤,

나는 내 머리가 없는 것을 알았다.

처음 가졌던, 내 아버지가 주신 머리가 없는 것을 알았다.

고국의 친구가 그랬을까, 하느님같이 큰 손이 그랬을까.

머리를 잘 세워 생각을 옳게 고쳐주려고 내 머리를 잡았던 것인가.

나는 귀찮은 참견이 싫어 내 머리를 끊어주고 도망치고 말았던가.

머리 없는 몸뚱이와 사지만으로 죽은 듯 움직이지 않고

숨어사는 도마뱀. 가끔은 내 머리가 그리워진다.

잘려나간 내 머리는 지금쯤, 무엇을 생각하며 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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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아직 끝나지 않은 기쁨 _ 마종기

2016. 4. 19. 12:04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출처: brunch.co.kr

 

 

 

 

별, 아직 끝나지 않은 기쁨   

 

                                                마종기

 

 

오랫동안 별을 싫어했다

내가 멀리 떨어져 살고 있기 때문인지

너무나 멀리 있는 현실의 바깥에서

보였다 안 보였다 하는 안쓰러움이 싫었다

 

 

외로워 보이는 게 싫었다

그러나 지난 여름 북부 산맥의 높은

한밤에 만난 별들은 밝고 크고 수려했다

손이 담길 것 같이 가까운 은하수 속에서 편안히 누워

잠자고 있는 맑은 별들의 숨소리도 정다웠다

 

 

사람만이 얼굴을 들어

하늘을 별을 볼 수 있었던 옛날에는 아무데서나

별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요즈음

사람들은 더 이상 별을 믿지 않고

희망에서도 등을 돌리고 산다

 

 

그 여름 얼마 동안 밤새껏

착하고 신기한 별밭을 보다가 나는 문득

돌아가신 내 아버지와 죽은 동생의 얼굴을 보고

반가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사랑하는 이여

세상의 모든 모순 위에서 당신을 부른다

괴로워하지도 슬퍼하지도 말아라

순간적이 아닌 인생이 어디에 있겠는가

 

 

내게도 지난 몇해는 어렵게 왔다

그 어려움과 지친 몸에 의지하여 당신을 보느니

별이여, 아직 끝나지 않은 애통한 미련이여

도달하기 어려운 곳에 사는 기쁨을 만나라

 

 

당신의 반응은 하느님의 선물이다

문을 닫고 불을 끄고

나도 당신의 별을 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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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타고니아의 양 _ 마종기

2014. 4. 5. 01:29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파타고니아의 양  _  마종기



거친 들판에 흐린 하늘 몇 개만 떠 있었어.
내가 사랑을 느끼지 못한다 해도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것만은 믿어보라고 했지?
그래도 굶주린 콘도르는 칼바람같이 
살이 있는 양들의 눈을 빼먹고, 나는 
장님이 된 양을 통채로 구워 며칠째 먹었다.


어금니 두 개뿐, 양들은 아예 윗니가 없다. 
열 살이 넘으면 아랫니마저 차츰 닳아 없어지고
가시보다 드센 파타고니아 들풀을 먹을 수 없어
잇몸으로 피 흘리다 먹기를 포기하고 죽는 양들.


사랑이 어딘가에 존재할 것이라고 믿으면, 혹시
파타고니아의 하늘은 하루쯤 환한 몸을 열어줄까?
짐승 타는 냄새로 추운 벌판은 침묵보다 살벌해지고 
올려다볼 별 하나 없이 아픈 상처만 덧나고 있다. 
남미의 남쪽 변경에서 만난 양들은 계속 죽기만 해서
나는 아직도 숨겨온 내 이야기를 시작하지 못했다.






무덤덤하게, 시가 잘 읽힌다. 

직설적인 문구의, 그 장면들이 머리속에 생생하게 그려진다.


콘도르가 양의 눈을 빼 먹는다. 그 눈이 나와 마주친다. 

그런데, 살벌하지가 않다. 슬프다. 하염없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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