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미루어두었던 일은 다시 미루어야 할 것 같다

2022. 9. 29. 23:03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

우리해리와 함께 떠난 첫 파주 헤이리 마을 여행. 

 아침부터 마음이 분주했다. 여행 일정을 갑자기 정한 탓인지, 미뤄두었던 일들이 눈에 밟히었다. 늦잠을 잔 탓도 한몫했다. 부리나케 온라인 위탁 교육을 듣고, 서둘러 전세보증금 대출 여부도 확인하고, 미루어두었던 혼인신고도 해야만 할 것 같았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바쁘다. 마음은 바쁜데 시간이 없다. 떠나야 할 시간은 점점 다가온다. 아무래도 미루어두었던 일은 다시 미루어야 할 것 같다. 마음의 여유를 잃어버린 채 집을 나섰다. 파주로 향하는 차안에 무거운 침묵만이 우리와 마주하고 있었다. 

 무거운 마음으로 도착한 헤이리 마을. 마을로 들어서자 차를 타고 지나온 파주시와는 사뭇 다른 풍경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푸른 나무와 가지, 예쁜 건물, 그리고 여유로운 사람들. 예약한 모티프원에 도착했을 때, 이미 맘은 한결 가벼웠다. 떠나는 자의 자유와 낯선 곳의 새로움이 기분을 다시 좋게 만들었다. 

 모티프원 안내 직원을 도움을 받아 suite-black 방으로 올라갔다. 커다란 유리창으로 들어오는 따스한 가을 햇살이 우리를 맞아주었고, 싱그러운 녹색의 식물들이 우리 앞에 놓여 있었다. 어쩜 이렇게 예쁜 것인지.

 분주했고, 서둘렀던 모든 마음들이 다시 평안을 되찾았다. 망설였던 마음도 이제는 지나간 일이다. 잔잔하게 흘러 퍼지는 음악과 따스히 내리쬐는 햇볕이 이 공간을 꽉 채운다. 

 책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온라인 교육을 듣게 해주려는 우리해리의 따뜻하고 예쁜 마음이 더 고마웠다. 우리해리가 아니었다면 나 혼자서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툴툴거리는 나를 이곳까지 데려와 준 우리해리의 손을 잡고 다시 이곳을 방문해야겠다는 마음도 슬며시 맘 한켠 자리 잡았다. 

 방 중간에 가만히 앉아 오랜만에 집어든 시집을 찬찬히 읽었다. 다시 시집을 집어 들었다는 것이 기쁜 일이었고, 가을의 한 지점에서 시를 읽고 있다는 것은 더욱이 기쁜 일이다. 

 일상을 분주함을 내려놓고 찾아온 헤이리 모티프원. 아마 오랫동안 내 머릿속에 추억될 것이다. 우리해리와 함께 보냈기에 더 행복했고 더 따스했던 어느 가을 날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싶다. 

 

 "암술에 도착한 꽃가루란 하나의 기적이다 / 다시 해볼 것도 없이"

- 이현승, <은유로서의 질병> 중에서 - 

 

 

 

반응형
반응형

L'Étranger by kangsy85

Notices

Search

Category

First scene (1189)
프로필 (19)
삶을 살아내다 (407)
산업단지 (13)
도시재생 (4)
토목직 7급 수리수문학 (8)
토목직 7급 토질역학 (8)
자료공유 (106)
편집 프로그램 (8)
신앙 (285)
책과 글, 그리고 시 (252)
초대장 배포 (55)

Statistics

  • Total :
  • Today :
  • Yesterday :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Recent Trackbacks

Copyright © Nothing, Everything _ Soli Deo Gloria All Rights Reserved | JB All In One Version 0.1 Designed by CMSFactory.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