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육상부 선수 출신이다 _ 자주 달렸고, 지금도 달린다.

2016. 11. 19. 19:22 책과 글, 그리고 시/작문(作文)





초등학교 시절, 학교로 가는 오르막 길은 가팔랐다. 학교 근처에 살았던 탓에 늦게 일어나기 일쑤였고 오르막 길을 자주 뛰어올랐다. 재미 삼아 시간을 정해놓고 오르막 길을 뛰고 또 뛰었다. 숨이 차고 다리에 힘이 점점 빠져도 오르막 길을 자주 뛰어다녔다. 어릴때부터 뛰고자 하는 본능이 내재되어 있었던 것일까.



나는 초등학교 육상부 80m 단거리 선수였다. 친구들이 교실에서 수업을 듣고 있을 때, 나는 스파이크를 신고 흙먼지가 날리는 운동장 트랙을 돌고 또 돌았다. 장거리를 뛰어도 장거리 선수들에게 뒤쳐지지 않았다. 심폐지구력이 뛰어나기도 했지만, 지고 싶지 않았다. 승부욕은 누구 못지않게 강했다. 학교에서 나보다 빠른 사람은 없었다. 선배들은 나와 달리기 시합을 하길 원했고 나이 어린 내가 종종 이겼으며, 선배들은 후배의 빠름에 놀라곤 했다. 운동회에서 항상 반 대표 마지막 주자로 뛰었고, 다른 반 친구들을 가벼이 제치고 1등으로 결승선을 밟은 적이 많았다. 운동회때마다 나는 '영웅'이었다. 



육상부에 전학생이 들어왔다. 나와 같은 학년이었고, 복도에서 몇 번 마주쳤으며, 키는 컸고 체격은 다부졌다.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전학생은 도 대회 입상 경력이 있다고 했다. 육상부 감독은 전학생과 나의 경쟁 의식을 키웠고, 결국 나는 원하지 않던 시합을 하게 됐다. 리 둘은 출발선에서 준비 자세로 시작 총소리만을 기다렸다. 총소리가 크게 울려퍼졌고 내가 먼저 치고 나갔다. 30m를 지나고 있을 때 전학생은 무서운 속도로 격차를 줄이며 따라왔다. 격차는 점차 좁혀졌고 전학생은 나를 제치고 결승선에 먼저 도착했다. 전학생의 뒷심은 놀라웠다. 도 대회 입상은 소문이 아니었다. 이길 가능성이 보이지 않았다. 처참한 패배였다. 그뒤로 육상부에서 씁쓸하게 탈퇴했다. 



하지만 혼자, 자주, 달렸다. 수능을 마친 후 대학교에 들어가기 전, 자주 동네를 달렸다. 달릴 때 숨 차오르는 쾌감이 좋았다. 달리기 시작하면 달리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서 좋았다. 지금도, 나는 달린다. 화가 날 때, 미치도록 화가 날 때, 미치도록 운동장 트랙을 달린다. 달리는 행위에 모든 것을 맡긴다. 들숨과 날숨 사이의 간격이 좁아질수록 차올랐던 화는 점점 사라진다. 달려야 살기 때문에 달린다고 하는 것이 맞을까. 오늘도 화가 많이 났고 다시 달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바람은 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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