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리아의 바다 _ 마종기

2016. 6. 1. 22:34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출처: myblueday.tistory.com





알렉산드리아의 바다 



                                  마종기 




단 하루뿐이었다. 

지중해의 가벼운 물이 나를 둘러싸고 

해안에 기댄 호텔로 안내한 저녁, 

빛바랜 천 년 소음이 먼지에 젖어 

눅눅한 도시가 절반 정도만 보였다. 

나이 들수록 오래 생각하지 말라고

너무 길면 걷기가 힘들어진다고 

그 여왕은 해변을 걸으며 말해주었지.



잠을 잘 자야 잊는 힘도 생긴다. 

모래 위에 남겨둔 운명은 밀물이 지우고 

수줍게 고개 숙인 해안의 석양도 

잔잔하게 번지는 핏빛의 소식이 될 뿐, 

외로운 자만이 쉽게 털고 떠날 수 있다. 



지중해는 그 옛날부터 기다렸지만

이번에 만난 도시와 바다 사이에는 

불투명한 역사가 쓰레기 되어 병들고 

낡은 돌층계에서는 노래가 갈라지고 

호텔의 틈새 그림자만 마른 인사를 한다. 



목요일 그 하루저녁만이었다. 

늦더위와 파도 소리와 그 앞을 지나는

이집트의 허름만 중년들만 살아 있고 

기원전의 등대나 지진으로 무너진 도서관은 

역사의 구석에서 무거운 짐을 챙긴다. 

추억인 양 한숨 쉬는 먼 알렉산드리아, 

아직도 답신은 도착하지 않고 

그해의 밤도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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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아직 끝나지 않은 기쁨 _ 마종기

2016. 4. 19. 12:04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출처: brunch.co.kr

 

 

 

 

별, 아직 끝나지 않은 기쁨   

 

                                                마종기

 

 

오랫동안 별을 싫어했다

내가 멀리 떨어져 살고 있기 때문인지

너무나 멀리 있는 현실의 바깥에서

보였다 안 보였다 하는 안쓰러움이 싫었다

 

 

외로워 보이는 게 싫었다

그러나 지난 여름 북부 산맥의 높은

한밤에 만난 별들은 밝고 크고 수려했다

손이 담길 것 같이 가까운 은하수 속에서 편안히 누워

잠자고 있는 맑은 별들의 숨소리도 정다웠다

 

 

사람만이 얼굴을 들어

하늘을 별을 볼 수 있었던 옛날에는 아무데서나

별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요즈음

사람들은 더 이상 별을 믿지 않고

희망에서도 등을 돌리고 산다

 

 

그 여름 얼마 동안 밤새껏

착하고 신기한 별밭을 보다가 나는 문득

돌아가신 내 아버지와 죽은 동생의 얼굴을 보고

반가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사랑하는 이여

세상의 모든 모순 위에서 당신을 부른다

괴로워하지도 슬퍼하지도 말아라

순간적이 아닌 인생이 어디에 있겠는가

 

 

내게도 지난 몇해는 어렵게 왔다

그 어려움과 지친 몸에 의지하여 당신을 보느니

별이여, 아직 끝나지 않은 애통한 미련이여

도달하기 어려운 곳에 사는 기쁨을 만나라

 

 

당신의 반응은 하느님의 선물이다

문을 닫고 불을 끄고

나도 당신의 별을 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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