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문장] 미술의 마음-심리학, 미술관에 가다 _ 윤현희

2021. 10. 4. 19:13 카테고리 없음

8쪽

그림을 그리는 일은 머릿속의 관념을 탈피해 대상을 정확하게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한다. 일상의 문제 해결도 이와 같다. 삶의 매 순간은 나 자신, 나를 둘러싼 관계, 세상과 대화를 나누는 일이다. 

 

16세기 말 카라바조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의 등장과 함께 새로운 빛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암흑 화면 위에 투사된 바로크의 극적인 빛은 선과 악의 선명한 대립을 형성해 새로운 회화의 패러다임을 열었다. 격정적 호소력을 띤 바로크의 빛으로 대변되는 카라바조의 예술은 르네상스의 이상적인 미학과는 완전히 상반되는 현실직시적인 것이었다. 

반종교개혁의 기치를 든 가톨릭 진영에게 강렬한 종교적 호소와 육체적 단죄의 현장을 거리낌 없이 묘사한 카라바조의 회화는 더없이 강력한 매체였다. 

렘브란트가 이전, 혹은 동시대의 여느 화가들과 달랐던 것은 예술 창조자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기록했다는 점이다. 자신은 신을 닮은 모습으로 빚어진 창조물이며, 그 창조물을 화면에 재창조하는 자신은 예술가였던 것이다. 자화상을 응시하는 예술가의 눈빛 속에서 우리는 화가의 근대적 자아를 발견한다. 렘브란트의 일대기를 그린 자화상 시리즈는 자의식의 기록이다. 

 

21쪽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 _ 천재와 광인, 예술가의 이중성

대책 없는 전염병의 창궐과 죽음의 행렬 앞에서 교회와 성직자들의 절대적 권위는 무너졌다. 반종교를 외치며 과학과 이성의 세계로 귀의하는 지식인들은 그리스 문학과 과학에서 답을 찾고자 했다. 이는 르네상스 문화 혁명의 토대가 되었다. 귀족과 부유층은 팬데믹을 극복하고자 종교와 신앙의 힘을 빌려 고가의 예술작품을 제작했고, 이를 교회에 기부해 종교 미술과 예술 부흥을 유도했다. 이탈리아인들은 종교 예술을 통해 상처 입은 전신의 치유를 염원했다. 

 

22쪽

카라바조가 직설적인 빛과 어둠의 대립을 화면에 도입하고 전에 없던 창작 기법을 사용해 르네상스 회화의 패러다임을 바꾼 것은, BTS의 직설적이고 폭발적인 퍼포먼스가 21세기 글로벌 쇼비즈니스를 정복한 것과 유사하다. 

 

24쪽

빛과 어둠의 대립을 통해 들려주는 폭력적인 순교와 단죄의 이야기보다도 더 극적이었던 것은 화가의 실제 삶이다. 가톨릭의 총애를 받는 천재 화가로서의 삶이 빛이었다면, 폭력과 살인 전과로 수감과 도주를 반복하다 객사한 그의 삶은 암흑의 그림자다. 

 

29쪽

인간에게 내재된 광기가 긍정적 카타르시스로 표출된 형태를 예술이라고 한다면, 통제되지 못한 광기의 폭력적인 힘은 타인과 자신을 파괴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카라바조가 병든 자신의 모습을 바쿠스에 투영했던 것은 천재 예술가와 광인이라는 이중적인 삶 가운데서 침몰하고 말았던 자신의 삶에 대한 자기실현적 예언(개인의 믿음이 자신의 행동에 영향을 미쳐 그 믿음대로 행동이 변화하는 현상, 피그말리온 효과라고도 한다)의 증거였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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