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이야기 - 제가 변화된 지점이 있는건가요?

2018. 12. 10. 15:10 삶을 살아내다/상담

[일곱 번째 이야기 - 제가 변화된 지점이 있는건가요?]

 

 

 

 

 

선생님께서 상담의 목적은 문제의 답을 얻는게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상담은 하나의 시작점이지 끝이 아니다. 상담을 하면서 내가 가지고 있는 감정의 배경을 이해하면서 나를 좀 더 이해하는 것이 그 목적이라고 했다. 나를 알아가는 과정에 있지만, 상담을 통해 내가 어떠한 변화를 겪고 있는지 궁금했다. 내가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는 없으니 타자인 선생님께 변화된 지점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야 상담을 더 진행할 수 있는 나의 명분이 생길 것 같았다. 내 행동의 시작점은 '명분'이라는 것이 대화를 통해서도,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명백해진다.

 

선생님께 물었다. "선생님, 처음 봤을 때의 저와 지금의 저 사이에 변화된 지점이 있을까요?" 선생님은 잠시 머뭇거렸다. "변화된 지점이라... 자신을 더 이해했다는 것이 변화의 지점이 아닐까요?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본인 감정의 근거를 더 발견하지 않았을까요?" 동의하는 지점이기는 하나, 나에 대한 이해가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어떤 면에서 좋을까, 되묻게 된다.

 

상담을 받으면서 실제적으로 드러난 긍정적인 효과는 있었다. 제3자인 선생님과 나 사이에  비밀이 보장되기때문에 나는 거리낌없이 편하게 말할 수 있다. 본디 대화가 편한 사람이 아니다. 말보다는 글이 편하고, 글보다는 침묵하는 것이 더 편한 사람이다. 그러함에도 의지를 가지고 대화에 임하는 이유는 묵혀 두었던 이야기를 하면서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기 때문이다. 아무리 친한사이라도 말의 경중을 따지고 뒤로 자주 물러서는 습관이 있는 나에게, 아무런 조건없이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큰 행복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구에게도 속시원히 말할 수 없는 나의 언어들이 있으니 말이다.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싸움닭인 나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하나, 층간소음때문에 윗집 아주머니랑 대판  싸운 일. 둘, 스피치 학원 후기 때문에 원장이랑 언성을 높인 일. 셋, 민원인과 잘잘못을 따지느라 또 대판 싸운 일. 참 많이 싸운다는 생각을 했다. 지는 것을 싫어하고 무조건 이기려고 드는 공격적인 성격탓이다. 좀 이해해주면 좋으련만. 뒤로 물러서는 법을 잘 모른다. 잠시 물러서도 물러서는 것이 아니다. 다시 치고 나갈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다. 나는 꽤 공격적이다. 왜 물러서지 않을까. 자존심이 세기도 하지만 타인에 대한 관용의 마음이 부족해서이기도 하다. 왜 그럼 나는 타인에 대한 여유가 없을까. 왜, 도대체 왜...

 

매정함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몇주전 교회의 지체가 새로운 사역지가 떠나 교회를 떠났다. 꽤 오랜 시간 같이 있었던터라 정이 들만도했다. 그런데 지체가 떠나는 아무런 감정의 동요가 없었다. 무덤덤했다. 떠날 사람은 떠나야되지 않는가. 이번에만 그런 것이 아니다. 아프리카 1년 사역을 마치고 남겨진 사람들을 뒤로하고 한국으로 돌아올때도 그랬고, 2년 6개월간 대학원 생활을 마치고 학교를 떠날 때도 다름없었다. 선생님은 기본적으로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동의아닌 동의를 할수밖에 없었다. 왜 사람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을까. 그 대답을 하자면 지난번 만남때 이야기했던 '아버지'의 주제로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다.  

 

나의 성격과 행동의 기반을 알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의문점이 남는 행동양태가 여러가지 남아있다. 인간의 성격과 습관들이 단 하나의 사건을 통해 형성되지는 않는다. 한번의 중대한 사건, 그리고 비슷한 유형의 사건의 반복. 그러면서 어떠한 사건이나 상황에 대해 특정한 감정 또는 행동이 습관화 될 수 있다. 그러기에 나를 계속 살펴야한다. 어떤 것이 나를 쉽게 상처받게 하는지, 무엇이 나를 힘들게 하는지, 무엇이 나로 하여금 화나게 하는지. 선생님은 조력자일뿐, 결국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집요하게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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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째 이야기 - 이제 그만할까요?

2018. 11. 17. 22:02 삶을 살아내다/상담

[여섯 번째 이야기 - 이제 그만할까요?]


 

 

 

지난 다섯번의 만남에서 해야할 이야기를 거의 다 했다고 생각했다. 지난번 만남이 끝날 즈음에 할말이 없어 머뭇거리던 선생님의 어색한 웃음도 떠올랐다. 그만해도 되겠다는, 아니 이젠 그만해도 되는 명분이 생겼다. 진전시킬 이야기가 없으니 선생님을 만나야 할 필요도 없어진 것이다. 

 

다시 선생님과 마주했다. 잠깐의 침묵이 우리 사이에 대화의 소재가 고갈됐음을 더욱 선명하게 각인시켜주었다. "우리 이제 무슨 이야기를 할까요?" 선생님은 대화를 이끌어야 가야할 주체이지 않은가. 대화를 시도하려는 의도가 엿보였다. "그렇죠. 우리 무슨 이야기를 해야할까요?" 되레 물었다. 해야할 이야기가 대부분 끝났다는 생각들이 대화할 의지를 꺽었다. 

 

선생님은 지난번 만남때 언급되었던 '친절함'에 대해 다시 말씀하셨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나의 상태와 상황을 좀 더 친절하게 설명하라는 것이 선생님의 요구였다. 관계에서 친절하게 대하는 것이 타인의 대한 배려라고 강조하셨다. 아무말 없이 입을 닫아버리거나 관계를 거리를 두면 상대방은 당황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동의했지만, '굳이 내가 왜 나를 상대방에게 친절하게 설명해야 하는가'라는 반문과 불편한 감정이 불쑥 올라왔다. 성향상 감정을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 자체가 어색하기도 하겠지만, 선생님이 친절하게 행동하라고 하니까 그 말을 따르기 싫은 것도 있었다. 돌이켜보면 본래 나는 친절하지 않기도 했다.

 

갑자기 내가 관계를 중요시 하지 않는 이유가 불현듯 떠올랐다. 대화의 주제를 갑자기 바꿨다. "나는 왜 인간관계를 경시하는지, 왜 관계의 중요성을 간과하는지" 어릴적 아버지는 나에게 "친구 다 소용없다"고 자주 말씀하셨다.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진 않았다. 근데 아버지의 삶을 지켜보면서 그 말이 사실이었음을, 간접적인 경험의 축적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아버지는 친구들에게 많은 돈을 빌려주고 받지 못했다. 그 일로 인해 어머니와 자주 싸우던 모습이 생생하다. 친구 보증때문에 친구와의 통화에서 언성을 높이시며 벌겋게 달아오른 아버지의 얼굴도 선명히 기억난다. 그렇다. 경험은 참으로 무서운 것이다. 

 

선생님은 주로 듣고, 나는 나의 삶을 이야기한다. 선생님과 대화할 때 이야기의 맥락은 없다. 생각나는대로 대화의 주제를 바꾸어 이야기한다. 왜냐면 정보의 축적이 선생님이 나를 더 올바르게 파악하는 하나의 수단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1시간 동안 이야기를 하고나서 좀 더 이야기해 볼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다음 만남을 약속했다. 선생님은 다음주 공동 의회에서 사고치지 말라고 당부하셨고, 나는 멋적게 웃으며 인사했다. 

 

 

 

"다음에 다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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