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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을 되돌아보며 - No pain, No gain.

kangsy85 2019. 7. 25. 18:28

 

2018년은 교회에 대한 고민을 끝내리라, 굳게 다짐하고 묵혀둔 고민과 생각을 하나씩 풀어간 의미 있는 한해였다. 물론 생각보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고 중간에 그만두고 싶기도 했다. 다른 명분으로 도망치려고도 했다. 하지만 결과론적으로 잘 견뎠다. 지난 과정을 통해서 얻은 몇 가지 유익은 있다. 

 

 

나를 둘러싼 환경을 바꿀 수 있는 힘이 당장 나에겐 없다. 그러나 그 굳건한 환경앞에서 어떻게 반응할지 그 태도는 내가 정할 수 있다. 그걸 정할 수 있는 자유는 나한테 있다.
-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中에서-

 

첫째, 깨진 관계를 다시 회복하려는 첫 시도였다. 인간관계가 틀어지면 뒤돌아보지 않고 관계를 끊고 달아난다. 인간관계는 유리와 같아서 한번 깨지면 처음 상태로 회복할 수 없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도 다르지 않았다. "교회" 공동체와 나 사이에 갈등이 발생했고, 다시 원상태로 돌이킬 수 없다는 판단 아래 공동체와의 인연을 끊으려고 했다. 결정적으로 말씀이 나를 가로막았지만 거부하려면 모른척하고 도망갈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말씀을 직면했고 결정을 돌이키기로 했다. 그 시점 이후로 내적으로 혼란스러웠다. 왜냐면 깨어진 관계를 다시 회복한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버티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교회 공동체에 있는 것 자체가 불편하고 어색했지만 견뎌야 했다. 왜냐고? 결정에 관한 책임을 져야 하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편해지는 것 같았지만, 여전히 마음 한편에는 "언제든 떠날 수 있다"는 가정이 전제되어 있었기 때문에 불안한 상태였다. 불편한 관계를 견디면서 깨달은 사실 하나, 버티는 것만으로 관계를 회복할 수 없다는 것. 어떤 방향으로든 관계의 회복을 위해 움직여야 했다. 그 첫걸음이 '봄나들이' 였던 것 같다.  첫걸음을 디뎠으나 넘어졌다고 할 수 있다. 나들이가 끝나기 전에 도망쳤으니까. 그러함에도 스스로 첫걸음을 내디뎠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둘째, 나를 더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였다. 35년 동안 나를 잘 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 사건을 겪으면서 내 마음을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고민하는 어떤 지점에서 이해는 되지만 어떤 이유 없이 납득하지 못하는 상태가 너무 혼란스웠다. 내 안의 어떤 감정들이 특정한 것을 부정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었다. 답을 내릴 수 없는 문제를 계속 생각하면 생각은 쳇바퀴를 돌 수밖에 없다. 결국 미치는 거다. 생각의 실타래를 끊기 위해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상담 전문가를 찾아갔다. 몇 달간 나와 관련된 사건을 진지하게 이야기하면서 몰랐던 '나'를 알아갔다. 내가 어떤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내가 왜 친절하지 않은지, 내가 왜 침묵을 즐기는지. 상담을 통해 느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나는 더 복잡한 인간이었다.

 

2018년, 힘들었지만 유익한 한해였음은 틀림없다. 2009년, 2012년도 그러했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헛소리는 믿지 않는다. 다만, 아픔이 나를 성장시킨다는 것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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