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5장 _ 야곱의 영적세겜과 벧엘

2016. 11. 3. 19:54 신앙/창세기 묵상




야곱이 에서를 만나고 난 후 35장 전까지 신자로서 마땅한 삶을 살지 못했다. 그의 자녀들은 세상의 것을 좋아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악한 일을 당하게 된다. 더 안타까운 것은 그들은 악을 악으로 갚는다. 이때 야곱은 자식들의 악행에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으며 그저 자신의 안위만을 걱정한다. 그런 상황을 보면, 분명히 야곱은 영적으로 어두운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야곱과 그의 자식들이 세겜에서 저지른 일들에 대해 깊이 생각해야 한다. 자신에게 악을 행한 이들의 피를 보게되는 결과도 당연히 나쁘지만 그 과정 또한 올바르지 않았다. 악을 악으로 갚는건 절대 신자의 태도가 아니다. 죄에 대한 응당한 처벌은 하나님의 몫이다. 


야곱은 창세기 35장에 이르러서야 그들 중에 있는 죄악을 청산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돌아가려고 노력하다. 또한 자신이 하나님께 약속했던 것들을 기억하며 하나님을 예배한다. 야곱도 영적 세겜을 떠나 벧엘로 가야만 하나님이 예비하신 복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나도 다를바 없다. 하나님께 처음 엎드렸던 그때를 기억하며, 하나님께 약속했던 것들을 다시 상기해야 한다. 가장 낮은 자의 자세로 살겠다고 했다. 빛도 이름도 없이 하나님의 종으로서 살겠다고 다짐했었다. 근데 지금, 나는 교만하고, 이기적이며, 옹졸하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나를 지켜보시며 인내하셨다. 아니, 믿고 기다려주신거라 생각한다. 하나님은 사람을 인격적으로 대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강압적으로 무언가를 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때론 전적인 주권이 필요한 경우가 있긴하다. 날마다 그 약속들을 되새기면 말씀으로 돌아가야 하며, 그 말씀을 통해 부어지는 은혜를 맛봐야 한다. 그 길만이 살길임은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Soli Deo Glo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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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2장 1-12절 _ 야곱의 기도

2016. 11. 1. 00:23 신앙/창세기 묵상






32장 1-12절


야곱이 라반을 떠나 에서를 만나러 가는 길에 하나님의 군대를 만나고 그곳을 마하나임이라고 칭한다. 그러고서 자기보다 앞서 사자들을 보내 에서에게 자신의 근황을 전하게 한다. 사자들이 에서를 만나 야곱의 말을 전하고 난 다음, 에서는 400명을 거느리고 야곱을 만나러 온다(6절). 야곱이 그 사실을 알고나서 너무 두렵고 답답한 마음으로(7절) 하나님께 자신을 구해달라고 간청한다.


야곱의 기도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자신에게 어떠한 말씀 하셨는지에 대해 언급하면서 시작된다(9절). 신자의 기도는 분명하게 기도를 받는 대상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하나님되심을 되새기는 것은 피조물로서 하나님의 주인됨을 한번 더 일깨우는 효과가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기도의 자리마저 은혜임을 깨닫게 해줄 수 있다.


그 다음 야곱은 자신을 이제까지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한다(10절). 야곱은 특별했기 때문에 하나님 백성이 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으로 아브라함을 택하셨고 야곱은 그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보호하심 아래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이다. 아무 자격 없는 자가 은혜의 테두리 안에 들어왔으니 감사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야곱의 삶을 보면 하나님의 손길이 곳곳에 미쳤음을 알 수 있다.


그러고서 이전까지 지켜주신 은혜를 바탕으로 두려워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을 에서의 손에서 건져달라고 간절히 부르짖는다(11절). 그와 함께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약속하신 말씀을 언급하며 반드시 지켜주셔야 함을 하나님께 상기시킨다. 왜냐면 야곱이 하나님께 말한 언약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일방적으로 체결하신 것으로, 그 언약이 지켜주지 않았을 경우 그에 대한 책임은 하나님이 전적으로 지기로 했기 때문이다.    




32절 13-32에서 계속


Soli Deo Glo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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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0장 1~18절 _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

2016. 7. 25. 14:18 신앙/창세기 묵상

 

 

Johann Heinrich Roos, 아비멜렉 앞의 아브라함과 사라, 1681[각주:1]

 

 

 

본문: 창세기 20장 1~18절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

 

1. 본문은 창세기 20장 1~18절입니다. 내용을 간략히 이야기하자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인간적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언약을 바탕으로 그를 온전히 보호하시며 돌보신다는 것입니다.

 

2. 아브라함은 여전히 연약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아브라함이 사라때문에 거짓말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75세에 하란을 떠나 애굽으로 갔을 때 아브라함은 바로에게 사라를 누이라고 거짓말 합니다. 이로 인해 '바로와 그 집안이 큰 재앙(12장 17절)'을 받게되지요. 그로부터 24년이 지나 99세에 아브라함은 똑같은 행동을 하게됩니다. 24년간 그는 하나님께 의롭다 칭함을 받기도 했고, 여러민족의 아버지라 칭함을 받아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이름도 바꾸었습니다. 믿음의 여정을 통해 그의 믿음은 성장했지만 그의 인간적 연약함은 여전했습니다.

 

 
 

3. 그렇지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언약에 대한 신실하심을 다시 한 번 보여주십니다. 그가 거짓말을 한 후 아비멜렉이 여러민족의 어머니가 될 '사라'를 데리고갑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언약을 체결하실 때, 그 언약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그 언약을 이루기 위해서는 사라를 통해 아브라함의 자손이 나와야만 했습니다. 혹여나 사라의 태에서 아비멜렉의 자손이 나온다면, 그 언약은 완전해지지 못하지요. 그 일로 인해 아비멜렉과 그 집안 여성의 모든 태를 닫으셨습니다. 하나님의 그 언약이 파기되면 자신도 고기처럼 찢어져야하기에 단호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언약에 대한 신실함으로 인해 아브라함은 어려움에서 벗어납니다. 아브라함 입장에서는 그저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감사하며, 신실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최선이겠지요.

 

4. 여기서 한가지 더 생각한 것은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 아브라함을 통해서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자신의 선지자라고 말씀하시며,  아브라함이 기도를 해야 아비멜렉을 살려주신다고 했으며(7절), 아브라함이 아비멜렉과 그집안의 태를 위해 기도를 했을때 그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17절). 하나님의 모든 것을 하실수 있으며 모든 것을 아십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기도를 통해 일하십니다.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시기때문에 신자는 기도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신자로서 마땅히 기도해야하며, 그 기도는 하나님이 듣고 계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합니다.

 


 

Soli Deo Gloria

 

  1.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xidao&logNo=220603893896&categoryNo=29&parentCategoryNo=10&viewDate=¤tPage=1&postListTopCurrentPage=1&from=postView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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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9장 1~38절 _ 하나님의 은혜, 그리고 인간의 죄악

2016. 7. 25. 14:11 신앙/창세기 묵상

본문 : 창 19 : 1~38

 

[하나님의 은혜]

 

1. 본문은 창 19 : 1~38 입니다. 전체적인 내용을 먼저 살펴보자면, 하나님이 소돔 땅을 멸하시기전에 그 땅에 있는 롯의 가족을 먼저 구하고 소돔땅을 멸망시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 즉 두딸은 다시 악을 범하게 됩니다.

 

<출처: https://namu.wiki/w/%EC%86%8C%EB%8F%94>

 

2. 본문을 읽으면서 크게 두가지로 생각해봤습니다. 첫째, '롯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남았는가 아니면 의인이었기 때문에 살아남았는가 ' 입니다. 성경을 살펴보면 둘다인것 같습니다. 성경을 볼때 '가정'은 좋지 않지만 한번 해보겠습니다. 만약 아브라함의 간구가 없었다면 롯은 의인과 상관없이 죽었을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처음에 소돔땅을 쓸어버리려고 했으니까요. 하지만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간구를 듣고, 그를 생각하사(29절) 롯을 살려줍니다.  죽었어야 하는 롯이 살았으니,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성경은 롯을 의인(벧후 2 : 7~8)이라 칭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롯은 의인으로서 아브라함의 조건부 간구(의인과 악인을 함께 벌할수 없다)에 충족되는 인물이었고, 살수 있었다고 봅니다.

 이 본문을 구원과 직접적으로 연관시켜 생각한다면 인간의 행위가 강조된다고 볼수 있지만, 그건 우리가 흔히 말하는 믿음의 행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구원받은 자도 날마다 하나님을 닮기 위해 성화의 삶을 살듯이 말입니다.

 

<출처 : http://blog.daum.net/duaworld/2239070>

 

 
 

 둘째,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는 자들은 다시 세상의 것들을 따라간다는 것입니다. 롯의 두딸은 분명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들입니다. 죄로 인해 멸망하는 소돔땅을 두눈으로 목격했습니다. 더욱이 하나님이 그들의 손을 잡고 소돔땅에서 구해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현실의 상황(31절, 배우자가 없다는 것)을 이유로 범죄하게 됩니다. 그로 인해 후에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모압과 암몬 자손이 태어나게 됩니다.

 

3. 적용하자면 신약의 신자는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자들입니다. 그 근본적인 은혜를 망각되거나 약화되기 시작하면, 세상의 것들에 관심이 더 가고 걱정과 두려움이 커지는 것 같습니다. 신자는 구원의 은혜를 더욱 묵상하고 되새겨야 하며, 상황에 의해 타협하는 죄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Soli Deo Glo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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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8장 16~33절 _ 의인의 간구

2016. 7. 25. 14:00 신앙/창세기 묵상

 

 

< 출처: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umaumaru&logNo=220703350516>

 

본문 : 18장 16~33절

 

[의인의 간구]

 

1. 본문은 하나님께서 죄악이 관영한 소돔을 벌하시겠다고 선언하신 후, 아브라함이 소돔에 있는 의인을 위해 소돔의 멸망의 부당함을 호소하는 내용입니다.

 

2. 하나님께 간구한 아브라함은 의인입니다. 19절을 근거("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다")로 의인을 정의하자면 첫째, 구원의 경륜에 의해 택함받은 자들입니다. 구약의 아브라함도, 신약의 신자도 전적인 하나님 은혜로 선택받은 자들입니다. 둘째, '여호와의 도를 지켜 행하는 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입니다. 선택받은 아브라함이 장대한 믿음의 여행을 시작할 수 있었던 이유는 떠나라는 말씀에 바로 순종했기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3. 그 아브라함은 소돔을 위해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악인때문에 벌을 받는 것(23절)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섭니다. 자신을 위한 기도가 아닌 하나님의 백성, 즉 의인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4. 그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이 선택한 하나님의 백성이었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지만 구약시대 때 하나님 앞에 잘못 나아가면 죽음을 면치 못합니다. 아브라함이 자신이 인간으로 하나님 앞에 티끌과 같다고 고백합니다만, 그와 별개로 하나님 백성으로서 기도할 수 있는 권한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고 봅니다.

 

5.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간구를 다 들어주십니다. 그 간구는 조건부이었기때문에, 조건에 충족되지 못한 소돔은 멸망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간구를 기억하사 롯을 구해줍니다.

 

6. 그러면서 생각한 것은

 

1) 구약에서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께 앞에 서서 간구할 수 있었듯이, 신약시대에 신자들은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가(그 명분은 그리스도의 피입니다) 간구(기도)할수 있습니다. 신자의 특권입니다. 스스로에게 기도의 특권을 제대로 누리고 있는지 물었습니다.

 

2) 하나님께서 의인의 간구를 들으신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기도를 통해 롯은 살 수 있었습니다(19장 29절,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그리고 기도에 앞서 '나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있는가, 또한 불순종으로 인한 죄로 인해 나의 기도와 간구가 하나님께 상달되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물어봐야 하지 않나 생각했습니다. 

 

3) 그리고 기도의 내용입니다. 아브리함은 자신이 아닌 소돔에 있는 의인들을 위해 하나님 앞에 나아갔고, 의인들을 위해 말을 번복합니다. '나는 무엇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가'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입니다.

 


 

Soli Deo Glo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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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6장 _ 아브람과 하갈, 그리고 이스마엘.

2016. 7. 7. 22:49 신앙/창세기 묵상



베르하겐, 아브라함에게 쫒겨나는 하갈, 1781

<출처 : http://theologia.kr/board_holypicture/80626>



묵상본문 : 창세기 16장 1~16절 


1. 15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람과 언약체결식을 진행하면서 그 언약에 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지시겠다는 확증으로 쪼갠  고기사이를 홀로 지나가신다. 그 바로 뒤에 나오는 것이 16장의 하갈과 이스마엘 이야기다.


2. 15장에서 아브람이 언약에 대한 재확인을 받기는 했지만, 아브람이 하갈을 첩으로 받은 때가 약속의 땅 '가나안에 거주한지 십년째(3절)' 될때이다. 인간적 관점에서 보자면, 아브람은 언약의 성취를 기대하면서 조바심이 냈던건 당연하다고 본다. 


3. 아브람은 하갈을 첩으로 삼아 자손을 낳는 다른 방법을 택한다. 아브람이 사래의 권유로 이 방법을 받아들일수 있었던 이유는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15장 4절)'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아브람도 자신의 관점에서는 괜찮은 방법이라고 판단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다분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말이다. 아브람이 택한 방법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방법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계획하신 방법은 죽은 사래의 태를 열어 아이를 갖게 하신 것이다. 아브람의 생각을 뛰어넘는 일이었다. 


 
 

4. 15장의 사건이 발생한 후, 하나님은 침묵하시다가 13년[16장때 86살(16절)->17장때 99살(1절)]후에 다시 나타나신다. 참고로 아브람은 100세에 이삭을 낳는다. 


5. 이런 상황을 보면서 생각한 것은 아래와 같다. 


첫째, 언약을 받은 신자에게 '인내'가 꼭 필요하겠다는 것, 그리고 언약이 꼭 이루어질거라 확신과 함께 있어야 한다는 것.


둘째, 내 사고의 틀로 하나님을 제한시키고 있지는 않은가. 하나님이 언약을 성취해가는 방법은 아브람이 전혀 예상치 못한 차원의 일이지 않았는가. 


셋째,  '내가 성경에서 받은 언약(개인적인 약속도 포함)은 무엇이며, 그것에 대해 올바른 태도로 인내하고 있는가





Soli Deo Glo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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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 타락, 구속.

2016. 1. 18. 22:05 신앙/창세기 묵상



출처: blog.daum.net


참된 성경적 신학은 창조, 타락, 구속 세가지 원리를 균형있게 견지해야 한다.

 창조된 모든 실재가 하나님의 손에서부터 왔고 본래부터 선했다는 것, 

죄로 인해 모든것이 손상되고 오염되었다는 것, 

그러나 모든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속되고 회복되고 변혁될수 있다는 원리다.


- 낸시 피어시, 《완전한 진리》, p. 187-






 
 

여기서 좀 더 생각해볼 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하나님의 걸작품이 한순간에 타락하게 만든건 바로 라는 것이다. 죄의 파괴성과 그로 인한 절망과 슬픔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한다. 창세기 3장에서 말하는 죄는 하나님 말씀에 대한 불순종이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난 다음, 완전한 선이신 하나님이 나타났을 때 타락한 그들은 숨어버렸다. 어둠은 빛을 두려워하기 마련이다. 결국, 그들은 악한 행위에 대한 형벌을 받는다. 그러나, 놀랍게도, 하나님은 그들이 다시 지음받은 존재로 회복할 수 있는 복음을 제시하신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원시복음(창 3:15)이다. 원시복음에서 여자의 후손이 나타나서 뱀(사단)의 머리를 상하게 나타난다고 이야기 하는데, '여자의 후손'이란 남자의 씨를 통한 자연적인 잉태과정을 거치지 않은 동정녀 탄생[각주:1]을 의미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암시하는 것이다. 그 당시에 아담과 하와는 깨닫지 못했겠지만, 하나님의 그들을 위한 구속의 역사를 미리 준비하고 계셨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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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4장 후반 - 전쟁의 주권자, 하나님.

2015. 8. 7. 13:55 신앙/창세기 묵상


창세기 14: 17-24


17 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 한 왕들을 쳐부수고 돌아올 때에 소돔 왕이 사웨 골짜기 곧 왕의 골자기로 나와 그를 영접하였고

18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19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20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21 소돔 왕이 아브람에게 이르되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을 네가 가지라 

22 아브람에 소돔 왕에게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하노니 

23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하게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실 한 오라기나 들메끈 한 가닥고 내가 가지지 아니하리라 

24 오직 젊은이들이 먹은 것과 나와 동행한 아넬과 에스골과 마므레의 분깃을 제할지니 그들이 그 분깃을 가질 것이니라 




하나님 찾기 

1. 하나님의 천지의 주재이시다.(19절)

2. 하나님은 지극히 높으신 분이다.(19, 22절)


강조점 및 중심사상 

1. 전쟁의 주권자는 하나님이시다.(20절,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2. 전쟁의 승리에 대한 영광은 오직 하나님만이 받으셔야 한다.(23절,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하게 하였다 할까 하여-)


기타

1. 제사장 혈통이 아닌, 살렘왕 멜기세덱이 갑자기 등장하여, 아브람에게 축복한다. 




Soli Deo Glo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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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장 - 가인과 아벨

2015. 7. 15. 10:54 신앙/창세기 묵상






창 4 : 2-5상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농사사하는 자였더라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과 아벨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방식을 부모님께 배웠을까...

가인과 아벨은 자신의 삶의 방식을 따라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 가인은 농부로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고, 아벨은 양치기로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 


하지만, 중요한 건 제사를 드리는 우리의 입장과 방식이 아니라, 제사를 받는 하나님의 입장이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의 방식은 자신의 죄를 속죄하기 위한 제물이 포함되어야 한다. 가인이 농부이긴 하지만, 어찌됐든 자신의 삶의 방식이 아닌 하나님의 방식으로 제사를 드렸어야 한다. 하나님께 받으시기 원하시는 것은, 때론 우리의 의지와 뜻, 그리고 익숙한 삶의 방식을 버리고 하나님을 뜻에 따르는 순종(obedience)이지 않을까 싶다. 



Soli Deo Glo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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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장 - 하나님의 영광을 잃어버린자, 아담과 하와

2014. 8. 28. 22:50 신앙/창세기 묵상


창세기 3장 - 하나님의 영광을 잃어버린자, 아담과 하와





They realized they were naked.



창세기 3장을 보면,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자마자 그들의 눈이 밝아져(7절) 자기들이 벌고 벗은 줄 알게 되었고, 그로 인해 부끄럼움을 느꼈다. 그리고 늘 함께 계시던 하나님이 두려워져(10절) 동산나무 사이에 숨는다. 더욱이, 하나님께서 "왜 선악과를 먹었느냐" 고 아담에게 물었을 때, 아담은 하와 탓을 했고, 하와는 뱀이 자기를 꾀어서 먹었다며, 뱀탓을 한다. 아담과 하와는 자신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고, 남에게 잘못과 책임을 전가시킨다. 



I was afraid because I was naked.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한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인류에게 죄가 들어왔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사람은 죄가 들어옴으로써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되었고, 그로인해 두려움, 부끄러움, 이기심 등과 같은 사람의 악한 모습들이 드러나게 된다. 이러한 모습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잃어버린 자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사람에게 아무런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죄로인해 하나님과 단절되기는 했지만,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1장 26절)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인격적인 부분을 어느정도 가지고 있다. 위에서 말한 악한 모습도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의 속성인 사랑, 온유, 절제의 모습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친절히도,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죄짓기 이전의 사람으로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신다. 14절을 보면, '"내(하나님)가 너(뱀, 사탄)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이 발꿈치를 상하게 할것이니라" 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즉, 전적타락한 사람으로서는 어떠한 방법으로도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할 수 없지만,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간을 통해 회복할 수 있음을 알려주시는 것이다. 타락한 인간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긍휼함이라.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겠는가. 





Soli Deo Glo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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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2, 17장 - 아브람과 사래의 연약함, 그리고 하나님의 일하심.

2014. 8. 17. 02:01 신앙/창세기 묵상

Soli Deo Gloria



아브람(하나님이 '아브라함'이라고 명하기 전 이름)의 아내 사래(하나님이 '사라'라고 명하기 전 이름)은 자타가 공인하는 미인이었다. 「-내가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창 12:12 후반), - 애굽사람들이 그 여인이 심히 아리따움을 보았고 (창 12:14 후반」사래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아브람은 애굽땅에 이르렀을 때 사래를 누이라 속이면서 자신의 안전을 확보하려고 했다. 



원하건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러면 내가 그대로 말미암아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말미암아 보존되리라 하니라 

창세기 12:13



하지만 그녀는 현명하지는 못했다. 사래가 출산하지 못하여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때, 자녀를 얻기 위해 아브라함에게 그녀의 종 하갈과 동침할 것을 권유한다. 아브람은 그녀의 말을 듣고 하갈과 동침하여, 하갈은 임신하게 된다. 그로 인해 임신한 하갈을 임신하지 못하는 사래를 무시하게 된다. 화가 난 사래를 아브람에게 불만을 터트리고, 하갈을 학대한다. 사래 자신의 조급한 마음과 성급한 결정으로 인해 모든 상황이 벌어졌는데, 자신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고 아브람과 하갈에게 화풀이를 한 것이다. 얼마나 어리석은 여인인가. 



16 하갈이 아브람에게 이스마엘을 낳았을 때에 아브람이 팔십육 세였더라 17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창세기 17:16-17 



아브람과 사래가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지 못하고, 자신의 뜻대로 행한 댓가로 하나님은 침묵하신다.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을 낳았을 때가 86세였고, 하나님이 다시 아브라함에 나타났을 때가 96세다. 고로, 무려 13년 동안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사래에게 침묵하셨던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브람과 사래는 인간이기에 연약하다는 점을 분명하게 알려주는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일하시는 가운데 드러나는 주권적인 하나님의 섭리이다. 13년만에 아브람에 나타나신 하나님은 자신을 "전능하신 하나님"임을 강조하시면서 아브람에게 자신앞에 올바르게 서 있을 것을 강조하신다. 그리고 아브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익숙한 땅을 떠날 때에 했던 그 언약을 다시 상기시킨다. 이 때, 아브람은 '민족의 아버지'란 뜻의 아브라함으로 이름이 바뀌고, 사래는 '민족의 어머니'란 뜻으로 사라로 이름이 바뀐다. 결국 하나님은 연약한 인간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나가신다는 것이다. 이전에도 말했지만, 하나님은 한 번 세우신 언약은 절대로 시키신다. 


우리의 연약함과 나약함에 매몰되어 있지말고, 천지를 창조하신, 나를 지으신 전지전능하신 그분을 온전히 바라보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매번 듣고, 머리에 있는 말이지만, 가장 행동으로 옮기기 어려운 말이기도 하다. 



Soli Deo Glo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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