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로 산다는 것-공동체를 유지하는 네 가지 실천 _ 크리스틴 폴

2016. 10. 14. 17:26 책과 글, 그리고 시/서평(書評)





완벽한 공동체를 추구하는 데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 오늘 당신의 공동체를 충분히 누리라. 

- 장 바니에, 《공동체와 성장》(Community and Growth, 성바오로 출판사)



교회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자들의 모임이다. 동일한 신앙 고백을 바탕으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신앙 공동체이다. 사회 공동체와 비슷한 유형의 공동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교회는 근본적으로 사회 공동체와는 다르다. 교회는 예수그리스도가 피로 사신 것이며, 하나님이 그 예수님를 교회의 머리로 삼아 만물위에 세우셨다(엡 1: 22-23). 교회의 본질적인 위상은 현재 추락한 교회의 실상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다. 교회 그 자체로 거룩하고 존귀한 것이다. 



이 시대의 악한 권세들은 교회 공동체들이 올바르고 건강하게 세워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악한 권세들이 교회가 가진 본질적인 위상을 실추시킬 수는 없지만 교회 안의 사람들을 이용해서 갈등과 분열을 조장함으로써 교회를 무너뜨릴 수 있다. 왜냐면 교회로 모인 사람들도 세상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육체의 연약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신차리지 않으면 악한 세력의 유혹과 꾀임에 쉽게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함에도, 성도는 영적으로 새롭게 된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갈 힘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성도는 주일 예배 성경공부에서 배우거나 깨달은 것을 삶으로 증명해내려고 노력해야한다. 즉, 배운바대로 실천하면 되는 것이다.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따른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책이 《공동체로 산다는 것》이다. 교회 공동체를 건강하고 올바르게 세워 나가기 위한 중심이 '실천'이라고 설명한다(p. 13). 책에서는 서로 약속을 지키는 것, 진실하게 살고 진실하게 말하는 것, 감사를 표현하는 것, 남을 대접하는 것 등을 중점적으로 다루며, 실제 예시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방법들을 제시한다. 다만, 이 책이 아쉬운 것은 실천만을 강조함으로써 교회의 본질을 이해하는 중요성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책의 앞 부분에 실천을 해야하는 근본적인 이유들이 나오긴 하지만, 내용이 다소 빈약하다. 교회의 올바른 '이해'와 '앎'을 바탕으로 한 실천, 즉 믿음의 행위가 있을 때 교회가 이 시대의 빛(요 8:12)으로서 세상을 밝힐 수 있다.   

      


책의 좋은 문장들


 우리는 생명력과 신실함과 돌봄이 있는 공동체를 꿈꾸기 때문에 계속 교회를 세우고 회복해 나간다. 함께 있음을 누리고 기쁨을 나누며 은혜와 사랑으로 어려운 시간을 헤쳐 나갈 때 그러한 공동생활은 깊은 울림을 준다. 인간은 공동체 안에 있도록 지음받았다. 공동체 안에 있을 때 우리는 가장 풍요로워지고 가장 인간다워지는 것이다. 


 이 책은 우리 삶의 가장 근본적인 몇 가지 실천을 집중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생동감 있고 건강한 가정과 공동체와 교회에는 특정한 관계 유형이 있는데 그것은 서로 약속을 지키는 것, 진실하고 살고 진실하게 말하는 것, 감사는 표하는 것, 남을 대접하는 것 등이다. 이 실천들은 임시로 만들어진 그룹이 아니라면 지속성이 있는 거의 모든 그룹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우리는 성경과 함께 신학적, 도덕적 전통의 자료들을 검토하고 몇 권을 책을 중심으로 폭넓은 대화를 나누면서 지혜와 격려의 공동체를 이룰 수 있었다. 보고서에 적힌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 집중하기보다는, 그 내용을 바탕으로 다양한 실천과 그 왜곡이 어떻게 서로 작용하는지 이해하고자 노력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상황적인 요인들이 어떻게 실천들을 강화시키거나 약화시켰는지, 그리고 실패에 대해 건설적으로 반응하는 방법은 무어인지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 책에서 가장 먼저 감사의 실천을 다룬 이유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우리가 받은 은혜에 대한 응답이기 때문이다. 기독교 공동체는 감사로 시작하고 약속과 진실함으로 유지되며 손대접으로 표현한다. 하지만 이는 결코 단선적이거나 순차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은혜는 하나님이 우리를 받아 주셨다는 사실로 나타나는데 그 사실은 손대접의 실천을 끌어내고 강화시킨다. 우리의 약속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충실하심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우리의 진실함은 그리스도의 은혜와 진리로 말미암은 것이다. 


2장 감사하는 마음 


 값비싼 은혜로 구원받았음을 실제로 이해할 때 우리가 드릴 것은 오직 감사뿐이다. 그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인 삶의 핵심이다. 신학자 칼 바르트(Karl Barth)는 이렇게 표현했다. "[은혜와 감사는] 하늘과 땅처럼 한 쌍을 이룬다. 목소리가 메아리를 부르듯 은혜는 감사를 부른다. 번개 뒤에 천둥이 오듯 은혜 뒤에 감사가 온다." 하나님의 본질이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라면 하나님의 백성인 인간의 본질은 감사하는 것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감사란, 견딜 수 없는 슬픔 가운데 있을 때도 사랑의 하나님이 우리를 안전하게 지키는 분이시며 우리가 예배하는 하나님이 신뢰할 만한 분이심을 아는 것이다(시 13). 어려운 때에 감사하려면 우리가 이야기 전체를 알지 못한다는 것. 그리고 살아 있는 지금 이 순간에 아직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또한 우리 삶에 임재해 계신 하나님과 충실한 사람들의 고마움을 깨달아야 한다. 감사가 있을 때 죽음과 멸명은 우리의 결말이 될 수 없고 우리를 궁극적으로 주장할 수 없다. 


 감사할 줄 아는 능력은 많은 것을 가졌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무엇을 가졌는지 아는 힘에서 나오는 것이다. 


 몇 년 전 폴 투르니에는 "모든 것에 대해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은 그 어떤 선물도 기뻐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존엄성이나 평등의식과 연결 지을 때는 권리가 건강한 개념일 수 있지만, 그것이 확장되면 오히려 끊임없는 불만과 그 어떤 것에도 감사하지 않는 태도를 낳는다. 


 우리는 계약 관계에서도 여전히 그리스도인이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권리와 자격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타당한 일이지만, 계약의 상대편 역시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계약 관계가 깨졌을 때 매우 졸렬하게 행동한다. 불쾌하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는 듯 말이다. 문제 상황에서 은혜의 마음가짐이란, 불편함에 대해 감사를 느껴야 한다거나 항공사를 무조건 믿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삶의 모든 정황속에 계신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는 것이다. 


3장 감사의 어려움들


 아무런 반응도 없고 고마워하지도 않는 사람들을 계속 사랑과 인내로 섬기려면, 우리가 하는 일이 먼저 하나님께 드려진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들은 진실한 공동체로서 짐의 강점뿐 아니라 자신의 약점에도 주의를 기울였다. 짐을 섬김을 존중하는 것 이상으로 그의 존재를 소중히 여겨 주었고, 짐이 감사하지 못하고 권리의 문제로 힘들어할 때 곁에 있어 주었다. 때로는 균형을 잡기가 힘들었지만, 그들은 계속 신의를 지켰다. 결국 그들은 짐의 장점뿐 아니라 상처까지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4장 감사를 약화하는 것과 강화하는 것


 "공동체 안에 있을 때 비교 의식이 얼마나 심해지는지 나는 알고 있다. 바로 나에게 그런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어떤 사람이든, 남들보다 뒤처진다고 생각할 만한 조건은 수없이 많다. 원하는 것을 더 많이 얻는 사람, 더 좋은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 공부 잘하고 주목받는 자녀를 둔 사람, 의견을 내면 더 잘 수렴되는 사람, 당신보다 일찍 결혼 상대자를 찾은 사람 등등 수많은 사람이 떠오른다. '불공평함'이라는 괴물이 매일 저녁 식탁 주변을 서성이며 당신을 노려본다. 그토록 치열한 공동생활에서 비교는 위태롭게 분열을 일으키며 습관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 크리스 라이스, 《은혜가 중요하다-


 공동체는 불평이 큰 쟁점으로 떠올랐을 때, 문제점을 정확하게 다루고 불만과 해결책을 함께 이야기할 수 있도록 장을 마련하는 것이 좋다. 사람들이 공적인 자리에서 솔직하게 불만을 털어놓는다면 그 불평이 타당한 것인지 모두가 명확히 볼 수 있다. 서로에게 충실하고 진실한 환경에서는 문제의 건설적인 해결을 바라보게 된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는 감사할 수 있는 기회가 수없이 많다. 18세기 초, 신학자 윌리엄 로(William Law)는 매일 새날을 맞이하는 기쁨을 개인적인 작은 부활이라고 묘사했다. 


 "아침은 우리에게 새로운 삶의 시작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 자신을 새롭게 누리게 하시고 세상의 새로운 문을 여셨기 때문에, 하나님께 하루의 첫 예물로 찬양과 감사를 드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러므로 죽음에서 부활한 것처럼, 새로운 삶의 기쁨으로 매일을 맞이하라. 하나님의 선하심을 느끼며 날마다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라. 마치 우리를 위해 새롭게 지으신 것처럼 태양과 만물을 바라보라. 놀라운 축복속에서 선하시고 영광스러우신 창조자를 기쁨으로 찬양하라."


5장 약속들, 약속들


약속을 지키려는 마음이 없다면 우리는 결코 정체성을 지킬 수 없다. 

- 한나 아렌트, 《인간의 조건》(The human Condition, 한길사)


 성경에서 우리는 약속과 감사의 연관성을 쉽게 볼 수 있다. 감사는 충실함에서 나오는 행위이기도 하고 충실함에 대한 응답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백성은 과거에 하나님이 하신 언약과 그분의 신실하심에 기초하여 소망과 믿음과 감사로 불확실한 미래를 바라볼 수 있다. 이와 비슷하게, 감사하지 않는 것은 깨진 약속과 불성실함에 연결된다. 하나님 백성 가운데서 불평하는 것은 언약에 충실하지 못하다는 표현이거나 언약의 관계를 깨드리는 것은 해석된다. 


 하나님의 약속이나 언약은 조건이 없으며 예수님이 죽음으로 그것을 인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반응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 없이는 언약의 목표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 목표 중에는 하나님과 인간의 상호성이 있으며 참된 상호성은 인간의 자유로운 반응에 달려 있다. 


 우리는 신앙 공동체의 약속을 공개적으로 되짚어 보는 교회 전례를 통해 중요한 약속들을 재현하고 기억할 수 있다. 세례식은 약속들과 약속하기로 채워진 전례다. 우리는 세례식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신 약속들을 기억하고, 세례를 받는 사람 혹은 유아 세례자의 부모는 그에 응답하여 약속을 한다. 세례를 통해 사람들은 교회 가족의 일원이 되며 특정 교회의 신실한 구성원이 되어 어디에 있든 교회와의 친교를 추구하기로 약속한다.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그분을 따라 하나님이 약속하시고 예수님을 통해 얻는 새 생명으로 나아갈 것을 약속한다. 


6장 약속 지키기의 어려움들


 결혼을 예로 들면 계약과 서약의 차이를 분명히 알 수 있다. 역사적으로 기독교 전통은 결혼을 부부 두 사람과 그들의 가족, 교회, 하나님을 포함하는 서약으로 보았다. 결혼 서약이 한쪽이나 양쪽 모두의 과실로 회복이 불가능한 만큼 훼손될 수도 있지만, 이 서약에는 평생 충실하고 서로 책임을 질 것에 대한 분명한 기대가 반영되어 있다. 하나님의 서로의 앞에서 맺은 서약, 약속, 맹세는 때로 힘든 시간을 함께 지나느 동안 두 사람을 결합시키는 유일한 끈이 되기도 한다. 


 어떤 환경과 어떤 사람에게 헌신한다는 것은 시련과 갈등도 견뎌 낼 수 있는 관계를 형성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종종 사람들은 교회와 공동체에 들어왔다가 뿌리를 깊이 내리기 전에 떠나간다. 언제든 이동할 수 있다는 개념과 소비자적 사고방식이 결합하면, 사람들은 상황이 어려워질 때 쉽게 떠날 가능성이 높다. 


7장 약속을 약화하는 것과 강화하는 것


 약속을 어긴다는 것은 관계를 저버리고 공동체를 서서히 무너뜨린다는 의미다. 작은 배신들은 종종 놀라울 정도로 커다란 해를 입히고 다른 실천들까지 병들게 한다. 진실의 자리에는 속임수가, 환영의 자리에는 부재가, 감사의 자리에는 불평과 질투가 끼어드는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배신에 반응하고 어떻게 사랑을 지속하는가 하는 것은 개인과 공동체의 성숙을 시험하는 중요한 척도가 된다. 


 자신을 책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약속을 지키는 것에 대한 이런 이야기가 부담스럽게 들릴 수도 있다. 그들은 언제나 약속을 지키며 책임의 무게에 눌려 있다. 이 사람들이 가진 어려움은 어디까지 약속을 지켜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이들은 자신의 한계를 알고 있는 것일까? 치러야 할 대가는 점점 많아지고 공동체가 목적을 이룰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 때조자 그들이 '일을 잘 한다'는 이유만으로 점점 더 많은 역할이 주어지는 것은 아닐까?


 교회의 일원이 되는 것은 중요한 약속이자 삶을 변화시키는 헌신이라고 이해할 때, 우리는 교회 생활에 소비자의 태도로 임하지 않을 수 있다. 


"공동체 생활을 오래 할수록, 중요한 것은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그들과 끈기 있게 사는 것을 배우는 일임을 더 분명히 알게 된다. 문제들은 대부분 해결되지 않는다. 시간을 갖고 통찰력과 충실함으로 귀를 기울인다면 예상하지 못했던 때에 문제들은 사라진다. 하지만 그 자리를 대신하는 다른 문제가 늘 생겨날 것이다!"


 바울은 초대 교회를 향해 더 깊은 화합과 성숙으로 나아가라고 편지하면서, 사랑과 진리를 밀접하게 연결시켰다.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는 것은 범사에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는 것의 핵심이다(엡 4:1-5). 진실함이란 어려운 것을 말하는 것뿐 아니라 온유함과 겸손과 인내로 전체 그림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의 말은 확실하다"라는 표현을 쓸 때, 그것은 그가 언행이 일치하는 사람이며 정직한 삶을 산다는 뜻이다. 어떤 사람의 확실성은 약속을 지킬 때 잘 나타난다. 약속을 지킴으로써 그는 신뢰할 수 있고 믿을 만한 사람으로 여겨진다. 진실하고 충실하기 때문에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 말이다. 키르케고르가 지적했듯이 "당신이 약속한 것을 행하지 않을 때 진실로부터 훨씬 더 멀어지는 것이다"는 필연적인 결과다. 


 겹치는 것이 많고 가까운 공동체에는 다른 어려움들이 있다. 우리가 서로에게 진실을 말하고자 한다면 서로에 대한 진실을 알 필요가 있는데, 이처럼 서로에 대해 '깊이 아는 것'은 때로 위험하다. 크리스 라이스는 《은혜가 중요하다》에서, 자신의 공동체가 이러한 어려움에 부딪혔던 경험을 이야기했다. 그는 결점과 약함을 드러낼 때 어떻게 하면 우정을 깨뜨리지 않고 더 돈독히 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그들의 잘못이 너무 두르러지지 않으면서도 그것들을 빛으로 가져올 수 있는지" 고민했다고 말했다. 


9장 진실함의 어려움들


 진실을 말하거나 혹은 비밀을 지키는 데 있어 우리의 동기를 점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질문들이 있다. 이 진실은 누구에게 유익한가? 이것이 밝혀지거나 숨겨졌을 때 누가 이익을 보는가? 누가 상처를 받는가? 나는 왜 그것이 알려지길 원하는가? 진실을 말하는 궁극적 목적이 사람들과 공동체가 그리스도께로 자라가도록 돕는 것이라면, 우리의 동기들은 그 중심에 선함과 경건함으로 사람들을 세우고자 하는 열망이 있어야 한다. 


 성경은 진리와 빛을 밀접한 관계로 그려낸다. 에베소서 5장 8-9절에서 우리는 빛의 자녀로 살도록 초청받는다.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으로 빛의 열매를 맺는 삶 말이다. '빛'이 되는 것과 '빛의 자녀들'로 살아가는 것은 우리의 행위가 투명하고 공동체의 시선에 열려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즉 보이지 않는 곳에서 '비밀리에'하는 일이 거의 없이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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