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리아의 바다 _ 마종기

2016. 6. 1. 22:34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출처: myblueday.tistory.com





알렉산드리아의 바다 



                                  마종기 




단 하루뿐이었다. 

지중해의 가벼운 물이 나를 둘러싸고 

해안에 기댄 호텔로 안내한 저녁, 

빛바랜 천 년 소음이 먼지에 젖어 

눅눅한 도시가 절반 정도만 보였다. 

나이 들수록 오래 생각하지 말라고

너무 길면 걷기가 힘들어진다고 

그 여왕은 해변을 걸으며 말해주었지.



잠을 잘 자야 잊는 힘도 생긴다. 

모래 위에 남겨둔 운명은 밀물이 지우고 

수줍게 고개 숙인 해안의 석양도 

잔잔하게 번지는 핏빛의 소식이 될 뿐, 

외로운 자만이 쉽게 털고 떠날 수 있다. 



지중해는 그 옛날부터 기다렸지만

이번에 만난 도시와 바다 사이에는 

불투명한 역사가 쓰레기 되어 병들고 

낡은 돌층계에서는 노래가 갈라지고 

호텔의 틈새 그림자만 마른 인사를 한다. 



목요일 그 하루저녁만이었다. 

늦더위와 파도 소리와 그 앞을 지나는

이집트의 허름만 중년들만 살아 있고 

기원전의 등대나 지진으로 무너진 도서관은 

역사의 구석에서 무거운 짐을 챙긴다. 

추억인 양 한숨 쉬는 먼 알렉산드리아, 

아직도 답신은 도착하지 않고 

그해의 밤도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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