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리 되찾기

2012. 4. 30. 15:40 삶을 살아내다/일상(日常)

 

2년만에 돌아온 대학교정은 낯설다. 저마다 무리지어 다니는 곳곳에서 홀로 다시 교정을 걷고 있다. 밥도 혼자 먹은지 3달이 넘었다. 뭐, 그리, 나쁘진 않다. 견딜만 하다.

 내가 애용하는 과학도서관 4층에 화장실이 있다. 각층마다 다 있긴 하다. 그런데 대변을 볼 수 있는 4곳중 한 곳은 누수로 사용을 금지 시켜놨고, 또 다른 한 곳은 손잡이가 고장나서 사용할 수가 없다. 실제 사용할 수 있는 곳은 두 곳 뿐이다. 식사시간 전후로 화장실에 대변을 보려는 학생들이 몰리면 화장실 두칸은 턱없이 부족하다.


 

 4월 초순 점심을 먹고, 양치질을 하고 있었다. 내 옆에 한 무리가 있었다. 그들도 양치질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이야기 중에 고장난 화장실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친구 1 왈: 어제 똥 누러 왔는데 4층에 사람 다 차서 3층갔는데, 또 다 차서 2층, 1층까지 내려갔다 아이가.

친구 2 왈: 나도 그런 적 많다.



 그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왜 저학생들이 1층까지 내려가야 하나?'라는 질문을 하게 됐다. 고장난 두칸을 1달 반이 넘도록 그대로 방치했던 학교의 태도에 화가 났다. 그리고 1층까지 내려가야 하는 불편을 그냥 감수하고 있는 공대생들의 태도에 할말이 없었다. 자신들이 누려야 하는 권리를 잃어버렸는데,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학교 어느 부서에 전화해서 고쳐달라고 하면 될까?' 머리를 스치는 한 곳이 있었다. 총학생회를 통해 학교에 내 의사를 전달하면 해결될 수 있을 것 같았다. 홈페이지를 통해 총학 연락처를 찾아냈고, 바로 전화해서 4층 화장실 수리를  해줄 것을 요청했다.

 수리 요청한 것을 깜박잊은 채 1주일이 지나갔다. 그리고서 다시 화장실의 고장난 두칸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아직 안 고쳐졌잖아!', 순간 치밀어 오르는 짜증에 바로 총학에 전화를 걸어 따질까 생각했다. 하지만 감정적으로 접근하면 얻을 게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이성적인 글로 건의 하기로 했다. 아래는 내가 올린 전문의 일부다.    



4층 제 3열람실 화장실 


현재 과학도서관 4층 남자 화장실에 대변을 볼 수 있는 4곳중 한 곳은 누수로 사용금지 시켜놨고, 또 한 곳은 문 손잡이가 고장나서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4층 제 3열람실 총 인원수가 505명인데, 공대생중에 남학생이 많은 것을 감안하면 300명이상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식사시간 전후로 화장실에 학생들이 몰리게 되면 대변을 볼 수 있는 곳을 사용하기란 여간 쉽지 않습니다. 대변 한 번 볼려고 4층에서 3층, 3층에서 2층, 2층에서 1층까지 내려가야 합니다. 지난주에 전화상으로 건의를 드렸었는데 아무조치가 없어서 글로 올립니다. 빠른 조치 부탁드립니다.  

 이 외에도 여러가지 있으나 일단 이것만 적도록 하겠습니다. 총학생회에서는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의 의견을 소홀히 듣지 말아주시고, 학생으로서의 권리를 당당하게 찾을 수있도록 저희를 대변하며 학교측에 의사를 전달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낮에 글을 올리고 저녁에 홈피에 다시 들어가서 확인했다. '집행위원장'이란 닉네임을 가진 사람이 내 건의글에 여러 댓글을 달았다. 건의사항에 대해 빠른 조치하겠다는 것이었다. 글투를 봐서는 나름 차분한 사람 같았다.

그리고 다시 하루가 지났다. 그 날 저녁, 문고리가 고장났던 화장실 한 칸은 수리 되어 있었다. 잃어버린 권리를 다시 되찾았다는 성취감과 뿌듯함에, 혼자 수리된 문고리를 보고 한참 서 있었다. 시험기간이 다가와서 누수에 대한 것은 시험끝나고 고쳐준다고 했는데 두고 볼일이다.

 공대생들은 학생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되찾는 데 적극적이지 못한 것 같다. 아니, 아예 자신의 권리가 무엇인지 모를 수도 있다. 알고도 모른체 할 수도 있다.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난 마지막 1년동안 공대생으로 누려야 할 권리를 되찾기 위해 노력해 볼 참이다. 조금 번거롭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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