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얼룩진 안경

2016. 3. 24. 13:44 책과 글, 그리고 시/시를 쓰다

 

 

출처: holemess221.tistory.com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듯이, 인간은 태어나면 언젠가는 반드시 죽는다. 한치 앞을 알 수없는 것이 인생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지난 월요일 새벽에 둘째 큰아버지는 갑작스레 숨을 거두셨다. 예견치 못한 모든 것들은 당혹스럽다.

 

 

작년 장례식이 잦았고 장례식장에 자주 들락거렸지만, 타인의 '죽음'앞에 나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들의 죽음과 나는 별개였다. 신영복 선생님의 글처럼 '개인과 개인의 아득한 거리'의 사이에서 타인의 죽음을 아무런 초점없이 바라봤다.  

 

 

이번에는 달랐다. 장례식장에서 자주 휘청거리는 둘째 큰어머니의 모습에서 죽음이 불러온 충격를 보았으며, 둘째 큰아버지의 죽음을 맞이하는 사촌형과 사촌누나의 충혈된 눈 속에서 죽음이 드리운 이별의 아픔을 체감했다. 그리고... 아버지의 눈물을 처음 대면했다. 형님을 먼저 보낸 아버지는 몰래 눈물을 훔치셨고, 안경에 눈물의 흔적을 고스란히 남기셨다. 아버지는 얼룩진 안경알을 장례식 내내 닦지 않으셨다.   

 

 

 

의도치않게 맨 앞에서 큰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들었다. 가장 앞선 자리에서 장례행렬을 이끌었고, 가장 처음 화장(火葬)실에 들어갔고, 잘게 빻은 뼛가루가 담긴 유골함을 든 첫째 큰아버지를 모시고 가장 먼저 묘에 도착했다. 남은 자가 감당해야 할 슬픔의 현장에서 온몸으로 그 아픔을 받아냈다. 연로한 아버지와 마시마로처럼 귀엽게 웃는 엄마를 한참동안 바라봤다. 단 몇시간 만에 뼛가루가 되어 땅속에 고이 묻힌 둘째 큰아버지를 생각했다. 혼자 되뇌었다.

 

 

"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창세기 3: 19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살아있을 때 잘 살자..." 그리고 아무 말이 없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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