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시를 분석하지 않는다. 다만 읽을 뿐이다.

2013. 3. 20. 21:12 책과 글, 그리고 시/시에 울다

 

 

 

 

 

 

 중고등학교 시절, 국어 선생님들은 시를 읽지 않았다. 시에 숨겨진 비유와 대조, 은유와 같은 법칙을 발견하고 분석했으며, 한 단어에 특정 의미를 부여했다. 왜 시를 읽어야 하는지, 어떻게 시를 음미하는지, 아무도 내게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리하여, 난, 단지 시는 구절에 부여된 특정한 의미들을 외워야만 이해되는 이상한 나라의 글이라 생각했다.

 

 

 25살, 실연을 당하고서 시를 읽기 시작했다. 그때야 비로소 시가 읽혀지기 시작했다. 한 구절 한 구절이 내 가슴팍에 와 닿았고, 하루종일 읊조리기도 했다. 간혹 시를 읽다가 뜨거운 눈물이 뺨을 따라 흐르기도 했다. 아픔을 통해 시를 알게 되었다. 그 후로 좋은 시들을 찾아다니면서 읽었다. 시를 읽으면서 몽상가 기질이 늘긴 했지만, 삶의 소소한 것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몇 주전, 지하철을 타러 계단을 내려가는 길 벽면에 윤동주 시인의 '서시'가 적혔있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죽어가는 모든 것을 사랑해야지... 이 구절이 그냥 가슴 한켠에 고이 들어왔다.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가슴 속 소외받는 보잘 것 없는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나 또한 그들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다시 한 번 나를 흔들었다. 하염없이 지하철 보호유리에 비쳐진 나를 바라봤다.

 

 

 

난, 아직도 시를 알지 못한다. 잘 이해하지도 못한다. 하지만 시를 읽는다. 왜냐고, 그냥 좋으니까. 바쁘단 핑계로 시를 읽지 않았는데, 주말에 서점 가서 시집이나 한 권 사야겠다. 서서히 다가오는 포근한 봄과 함께, 시 한편 읽으며 잠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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