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 뒤에 사명이 있다

2020. 7. 5. 19:38 신앙/말씀 묵상(默想)

 

 

 

 이해한다는 것은 고상하면서도 품위를 잃지 않는 말이지만, 그 말에는 행동이 없다. 무소유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자기 나름의 이해가 오해의 발판"이 되기도 한다. 실제 어떠한 상황 또는 아픔을 똑깥이 겪어보지 않은 이상, 어쩌면 무엇을 이해한다는 말은 한낱 감상적인 말에 그칠 수 있다.

 

그러므로 다윗이 그 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집이 듣고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벽 명 가량이었더라 
삼 22:1~2

 

 다윗 자신도 사울에 쫓겨다니면서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었지만, 마음에 상처있는 자들의 우두머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들과 공유할 수 있는 아픔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아픔을 통해 400명가량의 환난 당한 자, 빚진 자, 마음이 원통한 자의 아픔을 바라보았던 것이다. 다윗은 사울에게 잘못한 것이 없었다. 단지 다윗의 용맹함과 담대함으로 인해 백성들에게 사울보다 더 많은 민심과 인정을 받았을뿐이다. 사울을 그런 다윗을 시심했고, 결국 죽이려고 했던 것이다. 다윗은 얼마나 원통하겠는가.

 

 

"아픔 뒤에 사명이 있다." 

 

 

 

 이용규 선교사님이 설교 중에 하신 말씀이다. 우리가 원치 않았던 삶의 고난과 아픔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언가 말씀하시고자 한다는 것이다. 나도 어려운 시간을 거치면서 누군가의 아픔을 바라보는 눈이 깊어졌고,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누군가 내게 다시 그 고통을 겪겠느냐고 묻는다면, 단호하게 "No"라고 말할 것이다. 단호한 대답처럼 힘든 시간을 겪는 것은 누구나 꺼리는 일이지만 아픈 시간들을 통해 누군가의 삶을 더 진실되게,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면 고통이 아무 쓸모없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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